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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이고, 이게 대통령이냐?


입력 2020.09.27 06:00 수정 2020.09.27 09:33        데스크 (desk@dailian.co.kr)

국가 중대 사태에도 국민 앞에 나서지 않는 건 직무유기

국민 생명과 재산 잃는 비극엔 당연히 TV연설로 분노하고 위로해야

ⓒ청와대 ⓒ청와대

그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잇따른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가 절대 다수 국민들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착잡하게 하며 국론이 찢기고 있을 때도 그는 절대로 TV에 나와 자신과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거나 여론조사로 절반이 넘는 국민이 바라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6월 우리 측 돈 235억원이 들어간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폭파,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려 온 국민이 허탈과 충격에 빠뜨려졌을 때는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만 열리고 안보실장이 유감 입장을 밝혔을 뿐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는 열리지 않았으며, 이때 역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접적(接敵) 해역에서 실족 사고이든 월북 기도이든(월북은 통신 감청을 한 군 정보 당국의 일방적 해석으로 정부와 여당이 사태 초기에 적극 주장했으나, 엊그제 공개된 북한 통지문에도 그런 언급이 없고, 유족이나 동료 공무원들도 수긍하지 않고 있다) 비무장 상태로 표류하던 중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사살되고 불에 태워지는 만행을 당했는데도 그는 TV에 나와 국민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다.


국가의 중대한 사태에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하지 않고 대변인에게 짤막한 유감 표명을 시킬 것이라면 대통령이란 직책과 인물이 나라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국가를 대표하는, 나라의 첫 번째 남자(First Man)이다. 그런 사람이 다른 무슨 일이 더 중요하고 바빠서 TV를 피하는지 그 이유를 정말로 알고 싶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오피니언 칼럼은 으레 큰 일이 일어났을 때의 해외 선진국 유명 정상들 사례를 소개한다. 필자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고 무능한 대통령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조지 W 부시가 9.11 테러를 당했을 때 TV 앞에서 뭐라고 연설했는지를 인용하겠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미국 국민들에게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Make no mistake - The United States will hunt down and punish those responsible for these cowardly acts.


(대통령인 저는 국민 여러분들께) 확실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 미국은 이 비열한 짓들에 책임 있는 그들을 쫓아가 잡아내 반드시 벌을 줄 것입니다.


미국은 과연 다음 대통령(공화당 부시와 당적이 다른 민주당 오바마) 때까지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끝까지 추적, 10년 만에 미 해군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원들이 그를 파키스탄의 한 은신처에서 찾아내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가장 무능하다는 대통령 축에 든다는 사람도 그 정도 말은 할 줄 알았고, 미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들, 즉 CIA 와 해군 등은 정권이 교체되어서도 전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총살된 공무원의 표류와 북한군이 그를 발견한 정황을 파악하고도 5~6시간 동안 구경만 한 우리 군과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은 다른 국내 문제에는 흔히 하던(했다고 대변인이 전한) ‘격노’도 하지 않았고 응징을, 상징적으로라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왜? 그에게는 짝사랑 같은 평화 구하기가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거의 이틀 동안 대변인 대독(代讀) 성명조차 나오지 않은 건 그의 22일 UN 화상 종전 선언 연설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없어지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나라와 공무원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두 가지를 지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문재인은 중대한 직무유기를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할 일을 대변인에게 미룬 건 진정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뭔가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북한 측을 이해해 주고 싶어 한 마음이 읽히는 것이다.


그는 아마 ‘대단히 미안’하다고 한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모종의 계산이 깃든, 말을 전한 통지문을 받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집권당 안팎 친문 패거리들은 ‘계몽 군주’ 운운하며 김정은의 ‘사과’에 감격, 많은 국민들을 참담하게 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회고록에 따르면 문재인은 수줍은 사람이라고 한다. 대선 당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몇 번 집으로 찾아 온 적이 있는데, 올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왔고 얘기도 그들이 주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줍은 사람이면서 감성에 호소하는 스타일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값싼 포퓰리즘이요 국민 세금을 용돈 주듯 나눠 주려 한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급 결정을 하면서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는 감상적 어법을 쓴 그다. 그 ‘정성’은 생각 있는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리고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에게만 주는 걸로 수정됐다.


국운이 더 이상 융성하지 않고 쇠락하는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문학소년 같은 감상적(感傷的) 대통령, 국가 중대사 발생 중에 아카펠라 공연을 보러 가는 감성적(感性的) 대통령보다는 냉철하면서도 강력한 결단과 용기를 보여 주는 야성적(野性的) 대통령을 더 필요로 한다. 탄핵 당한 박근혜가 무엇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가? 무능과 불통(不通)이 가장 큰 이유이다. 밑에서 써준 원고 없이 자신의 지식과 경륜으로 연설 한마디 못하는 그녀를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으로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이명박은 광우병 선동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무너졌고, 박근혜는 세월호 공격에 비실비실 속절없이 침몰했다. 야당에서 대통령의 장장 32시간(또는 47시간) 침묵에 의문을 제기,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공백을 가지고 민주당과 진보좌파들이 뭇매를 가했던 것처럼 분초 단위로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하라고 다그치자 집권당의 한 국회의원이 “세월호와 비교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라고 비난했다.


세월호는 선박 회사와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근본 원인이다. 설사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그 죄를 물을 수는 없는 후진국형 해상 사고인 것이다. 이번 연평도 어업 지도 공무원의 비극은 총격과 소각에 의한 북한군의 만행이다.


기가 막히는 일은 이 사건을 세월호와 비교하는 게 아니고, 그런 만행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와 국민과 함께 분노하고 국민들을 위로하며 응징을 천명하는 대신 대변인에게 유감 논평을 발표하도록 한 것이다. ‘이게 나라이고, 이게 대통령이냐?’라는 한숨 섞인 말이 절로 나온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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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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