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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집주인-세입자 갈등 넘어 분열로


입력 2020.08.04 05:00 수정 2020.08.03 17:54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전세 매물 동나며 지난달 전월세 거래량 급감

"정부 집 가진 자, 못 가진 자 대결양상 만들고 있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두번째 전국민 조세저항 국민집회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등 참석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두번째 전국민 조세저항 국민집회에서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등 참석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과 동시에 혼란을 겪고 있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며 일방적 전세갱신을 요구하고, 집주인은 이런 세입자에게 전세를 놓느니 차라리 집을 비워두거나 팔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3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공포안을 심의·의결하고, 관보에 게재해 즉시 시행했다. 전·월세 계약 기간을 4년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 내용이 담겼다.


이후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당장 전월세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먼저 전월세 매물이 동이 나며 거래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를 보면 지난달 서울시 전월세 전체 거래량은 8344건에 그쳤다. 지난 10년간 월별 기준으로 거래 건수가 1만건 이하로 내려간 것은 지난 달이 처음이다.


1만3787건(2019년 7월), 1만2826건(2018년 7월), 1만2867건(2017년 7월) 등 지난 3년간 같은 달 거래 건수와 비교해도 현격하게 감소했다.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동결하다시피 하는 계약을 이어나가느니 차라리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토로한다. 4년 후 급등한 전월세 가격을 마주할 세입자들 역시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매물이 붙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2년 계약이 끝난 세입자가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임대료도 진전 계약 임대료의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매물이 붙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2년 계약이 끝난 세입자가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임대료도 진전 계약 임대료의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 재계약 하느니, 차라리 비워 두겠다는 집 주인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법안 시행 후 안하무인격으로 재개약을 하겠다고 나오는 세입자 때문에 황당하다는 집주인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집주인 A씨는 “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세입자가 대뜸 문자를 보내 계약갱신청구권을 운운하며 재계약을 통보하더라”며 “이제 실거주를 하다가 매매할 것이기에 재개약은 불가하다고 했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입자는 매매보다 입대차법이 우선이라며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해, 그러라고 했다”며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정부 정책이 근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집주인 B씨는 “실거주를 하겠다고 하니 세입자가 정보 열람을 통해 실거주하는지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했다”며 “집을 비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세입자와는 계약을 이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일 앞으로 갱신권을 거절당한 세입자가 집주인이 실거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열람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 집주인이 손실을 감수하고 해당 주택을 2년 동안 공실로 두겠다면 정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


◇ 세입자 “4년 후 급등할 전세금 벌써부터 걱정”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세입자들도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는 세입자 C씨는 “4년은 마음 편히 산다고 해도 4년 후 전세금이 폭등하면 우리 가족은 결국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며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라고 토로했다.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통해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쫓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임차인이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 ‘2기 차임액을 연체한 경우’ 등 집주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C씨는 “법안에 파손에 대한 명확한 사례가 없어 판단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데, 만약 집주인이 작정하고 흠을 찾으려고 한다면 세입자는 불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질서를 파괴하고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혼란과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임대인인 집주인과 임차인인 세입자는 서로 배려하고 도움이 되는 상생의 관계가 돼야 하는데, 정부는 집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편가르기 대결양상을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어도 과정과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고 당사자인 집주인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졸속 정책이라면 오히려 안 하는 것 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희정 기자 (hjkim05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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