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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못 지킨 체육계, 8월 출범 앞둔 스포츠윤리센터라면?


입력 2020.07.07 15:22 수정 2020.10.07 18:29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설립 취지 살리려면 인식 변화와 추진력, 실질적 변화 이끌 제도 보완

최숙현 선수 죽음 잊지 않고 스포츠윤리센터 작동 여부에 관심 쏟아야

지난 4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위원 위촉식. ⓒ 뉴시스 지난 4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위원 위촉식. ⓒ 뉴시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 철저히 쇄신하겠다.”


지난해 1월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진 후 밝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대한체육회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철저한 혁신을 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마치 마지막이라는 각오와 혁신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1년여 만에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 폭행 및 가혹행위 사태가 터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는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영구 제명’ 중징계를 받았지만, 체육 관계기관에 수차례 SOS를 외치며 외롭게 싸웠던 최숙현 선수는 끝내 목숨까지 끊었다. 제도와 기구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스포츠윤리센터다.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인권센터 등 선수들의 고충을 해결하던 기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로 통합, 올 8월 공식 출범한다.


2019년 1월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독립기구 신설에 속도가 붙었다. 2월에는 관련법이 통과됐고, 문체부는 지난 4월 체육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에 착수했다. 선수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상설 독립기구를 만들자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 잘 짜놓은 제도를 수립한 계획대로 이행하는 추진력, 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현실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스포츠윤리센터도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경고다.


하지만 체육계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상하 권력관계가 뚜렷한 스포츠 세계에서는 선수와 지도자,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명령과 복종이 깔린 서열 문화가 강하다. 위계가 너무 분명해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가 발생해도 묻히고, 상급자 잘못을 폭로했을 때 선수 생명을 걸어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어 피해자나 목격자나 신고를 꺼린다.


지도자의 지시나 명령은 상식적인 과정이지만 복종을 강요한 선수 육성이라면 또 이런 사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는 지도자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는 국가대표 관리규정 변경 요구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해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선수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선수가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인식 못지않게 떨어진 추진력도 문제다.


스포츠윤리센터가 8월 5일 전에는 출범해야 하는데 아직도 조직이 구성되고 인원이 정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했던 스포츠윤리센터인데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예산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인력도 그만큼 줄었다. 구상했던 그림에서 멀어졌고, 추진 속도도 떨어졌다. 그렇게 자리 잡지 못하는 사이 최숙현 선수의 아픔을 막지 못했다.


출범 한 달 남겨놓고 비전은 고사하고 조직도 확실하게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최숙현 선수 죽음으로 부랴부랴 재정비(인력보강 및 센터장: 비상근에서 상근으로 변경)에 들어간 상황이다.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출범해도 한계가 있다. 최숙현 선수를 담당했던 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은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경찰에 증거자료 협조 요청을 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한계를 밝혔다. 문체부가 구성하는 스포츠 윤리센터도 강제 수사 권한이 없다.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특별사법 경찰제’와 같은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야 늘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체육계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자정능력을 잃은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기억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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