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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조롱당한 비 ‘깡’으로 뜨다

  • [데일리안] 입력 2020.05.19 08:20
  • 수정 2020.05.19 08:08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샌드백이 된 비

실력 갖춘 대인배

ⓒMBC 화면 캡처ⓒMBC 화면 캡처

최근에 비의 2017년 곡 ‘깡’이 갑자기 떴다. 공개 당시에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대로 묻혔던 노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튜브에서 누리꾼들이 ‘깡’ 뮤직비디오를 찾기 시작했다. 1일1깡, 1일3깡 등 ‘깡’ 중독자들이 나타나더니 급기야 조회수가 800만 건을 넘어가면서 인터넷 유행으로 자리매김했다.


누리꾼들은 ‘깡’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뮤직비디오 퍼포먼스를 재현하는 영상을 제각각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했다. ‘깡’을 따라 하거나 주기적으로 시청하는 ‘깡’ 챌린지도 생겼다. 엠블랙 멤버들은 ‘깡’ 리액션 영상을 올렸다. ‘깡’ 즐기기를 공유하는 누리꾼들은 스스로를 ‘깡팸’이라며 결속력을 다졌다.


‘깡’ 놀이 열풍에 결국 지상파 방송사가 움직였다. 유산슬 신드롬을 일으켰던 MBC ‘놀면 뭐하니’가 올 여름 기획으로 90년대풍 혼성그룹을 선정했다. 혼성그룹 멤버 섭외를 명목으로 ‘깡’의 주인공 비를 찾은 것이다. 당사자인 비가 등장해 직접 ‘깡’을 언급하는 것은 ‘깡팸’ 누리꾼에겐 일대 사건이었다. 시청률 8.5%로 해당 토요일 예능 최고 시청률에 등극했다. 비에게도 호평이 쏟아진다. 비는 다시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샌드백이 된 비


기대하기 어려웠던 사건이다. 얼마 전까지도 비는 실패의 아이콘이었다. 음악적으론 10여 년 간 히트곡이 없었고, 드라마도 최근작 ‘웰컴2라이프’가 크게 실패했다. 특히 영화쪽이 뼈아프다. 대작이 연달아 ‘폭망’했기 때문이다. 2012년 ‘알투비 : 리턴 투 베이스’와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비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비를 조롱하는 UBD(엄복동)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1UBD는 17만을 뜻한다. 바로 ‘자전차왕 엄복동’ 흥행 성적이다. 흥행대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 고작 17만 명을 동원했다. 영화사에 남을 정도의 폭망이다. 누리꾼들은 비의 침몰을 통쾌해하며 17만을 UBD라는 단위로 만들자고 했다. 비에 대한 야유였다. 비의 몰락이 누리꾼에겐 엔터테인먼트였다.


비를 조롱하는 놀이가 얼마나 만연했던지 통계청 유튜브 관리자가 무심코 선을 넘기도 했다. ‘깡’ 뮤직비디오를 찾은 통계청 유튜브 관리자가 이런 댓글을 단 것이다. ‘통계청에서 깡조사 나왔습니다. 1일 10시 기준 비 '깡' 오피셜 뮤직비디오 조회수 685만9592회, 3만9831UBD 입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비는 거의 샌드백 같은 존재로, 언제든 조롱해도 되는 우스꽝스러운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랏일을 하는 사람마저 본분을 망각하고 비 조롱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비를 조롱하는 분위기의 정점이었다. 달은 차면 기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조롱이 극한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통계청은 두 번 사과하기에 이르렀다.(첫 번째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질타 받음) 이때부터 변하기 시작한 분위기가 ‘놀면 뭐하니’ 비 출연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비의 이미지는 호감형으로 반전되고 있다. 비에겐 몇 년 만의 대사건이다.


실력 갖춘 대인배


애초에 비가 놀림감이 된 이유는 비의 ‘애매한’ 성공에 있었다. 월드투어를 돌고 헐리우드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성공했다. 비에겐 월드스타 딱지가 붙었다. 매체들은 비를 칙사처럼 떠받들었다. 한국의 마이클잭슨이라고 했다. 우리 역사상 놀라운 성공이긴 하지만, 월드스타 마이클잭슨 등은 ‘오버’였다. 비의 월드투어는 진짜 월드투어라고 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러자 사람들 마음속에 반발심이 생겼다.


그 와중에 진짜 월드스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류 전성기가 닥친 것이다. 한국 스타들이 해외 스타디움을 매진시킬 정도가 됐다. 심지어 방탄소년단 공연은 세계 최고 투어들 반열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런 게 진짜 월드투어고 월드스타의 행보다. 그럴수록 비가 대비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깡’ 뮤직비디오로 몰려가 조롱을 퍼부었다. ‘깡’이 표적이 된 것은 이 노래가 비 허세의 정점이라고 인식됐기 때문이다. ‘왕의 귀환,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이런 가사로 잘난 척하며 과격한 춤을 한껏 과시적으로 춘다.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가 상당히 강렬한데 그 때문에 이목을 끌면서도 허세라는 느낌이 더욱 강화됐다. 너도나도 비웃으며 ‘깡’을 조롱하는 것이 인터넷 ‘밈’이 되었다. 그러자 통계청 관계자까지 편승하게 된 것이다. 밈은 원래 진화생물학에서 나온 문화적 유전자라는 뜻의 용어이지만 요즘은 인터넷 유행을 폭넓게 일컫는 말로 쓰인다. ‘깡’ 조롱 밈 현상과 함께 밈이라는 단어도 대중화되고 있다. ‘놀면 뭐하니’에서 비가 직접 밈을 언급해 이 단어가 더욱 확산됐다.


이 밈의 흐름을 한순간에 뒤집은 건 쿨한 태도였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비 앞에서 ‘깡’을 언급하길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비는 자기도 1일3깡을 하고 있다며 김태희도 재밌어한다고 쿨하게 말했다. 이 ‘대인배’의 태도가 통계청 유튜브 관리자 사건 이후 변하기 시작했던 분위기에 결정타가 되었다.


비의 땀도 영향을 미쳤다. ‘놀면 뭐하니’에서 비는 자신의 여러 히트곡과 다른 가수의 노래들 안무까지 연이어 선보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비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한지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가짜 월드스타 허세라는 조롱에 비의 진짜 실력이 감춰졌었다. 사람들은 비를 우습게 보려고만 했다. 그래서 ‘깡’과 같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춤 실력 과시라고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에서 새삼 놀라운 실력이 확인됐고, 그 실력을 만든 비의 땀방울이 이제야 인식됐다. 비가 진정한 프로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가짜, 허세라는 이미지에서 진짜, 실력이라는 이미지로 바뀐 것이다. 거기에 쿨함까지 갖췄기 때문에 순식간에 호감으로의 이미지 전환이 일어났다.


인터넷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잊혀진지 오래인 양준일을 누리꾼이 발견하고 방송사가 띄워 새로운 트렌드로 만든 것처럼, 3년 전에 묻힌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누리꾼이 화제로 만들고 방송사가 띄워 이미지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이젠 콘텐츠만 잘 만들면 언제든지 주목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사람들의 이목이 모인 그 순간에 해당 뮤지션이 준비만 되어있다면 트렌드를 흔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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