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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칼바람] 車업계 "임금인상? 일자리부터 걱정해야"


입력 2020.04.03 05:00 수정 2020.04.02 16:4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사측, 생존 걱정하는 판에…금속노조, 기본급 12만원 인상 통일안 결정

자동차업계 해외 판매 부진으로 위기…내수판매도 7월 이후 폭락 우려

코로나19 장기화시 구조조정 우려…임금인상보다 고용보장 중점 둬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쏘나타 생산라인 전경.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쏘나타 생산라인 전경. ⓒ현대자동차

자동차업계의 임금·단체협약(임단협) 시즌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며 진통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당장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할 상황이라 노동조합과 임금인상을 놓고 힘겨루기를 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 노조가 주로 속해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올해 임금인상 요구안을 기본급 월 12만304원 인상으로 결정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금속노조에 속한 전 사업장 조합원 18만명 전원의 통일 요구안이다. 각 기업별 지부나 지회별로 사측과 교섭 과정에서 하향 조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최초 요구안으로 금속노조의 통일 요구안을 제시한다.


자동차업계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를 비롯, 기아자동차와 한국GM 노조가 금속노조에 속해있다. 생산규모 1~3위 기업이 모두 금속노조의 영향권에 있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올해부터 중도·실리 성향의 이상수 지부장이 이끄는 집행부로 교체되며 무분별한 투쟁보다는 회사 실적 개선을 위해 협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지만 올해 임금교섭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집행부가 조합원들에게 협력적 노사관계를 수용하도록 설득한 명분이 ‘임금협상(임협)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었기 때문이다.


사업부대표와 대의원들의 상당수가 현 집행부와 노선이 다른 현장조직 소속인 만큼 집행부는 올해 임협에서 강경한 요구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업계 임단협은 통상 5월 현대자동차 노사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현대차 노조의 요구안이 같은 계열의 기아차 노조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고, 한국GM 및 부품업체 노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K9 생산라인 전경.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K9 생산라인 전경. ⓒ기아자동차

기아차 노조는 2017년 8월 통상임금 판결 이후 이뤄진 잔업 미실시로 조합원들이 임금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사측과 대립해 왔다. 최근 수출물량 수요 감소 상황을 감안해 사측과 잔업 복원 협의를 중단한 상태지만 현대차 대비 임금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조합원들의 여론이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GM 노사는 지난해 임협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노사는 지난달 25일 임금 동결 및 자사 차량 구매시 바우처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2019년도 임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오는 6~7일로 예정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절반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최종 타결된다.


지난해 임협이 타결되더라도 올해 임단협은 다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2018년부터 2년 연속 연봉이 동결된 만큼 조합원들이 반대급부를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금속노조에 속해있지 않은 기업별 노조지만 금속노조 출신 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며 사측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지난해 임협을 여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사실상 결렬된 상태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달 26일 기본급 동결의 조건으로 직무수당 인상, 생산·영업직군의 통합, 노사 교섭대표의 공동 퇴진을 주장하며 협상을 원점으로 돌렸다. 노사간 대립이 지속된다면 올해 임단협까지 2년치를 묶어 교섭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머리에 띠를 두른 노동조합원이 걸어가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머리에 띠를 두른 노동조합원이 걸어가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자동차업계는 지금 노사간 줄다리기에 매달려 있을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자동차 시장 침체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발표된 완성차 5사 판매실적에 따르면 내수 판매실적는 전년 동월 대비 9.2% 증가했으나, 여기에는 주요 업체들의 신차효과와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라는 착시효과가 반영돼 있다.


신차 효과는 기껏해야 6개월이다. 출시 초반 수요가 집중되지만 시장에 어느 정도 풀리면 일상적으로 돌아오는 게 일반적인 사이클이다.


개소세 인하 효과는 6월 말까지만 유효하다. 지난달에는 평소보다 최대 100만원씩 싸진 조건에 구매자가 몰렸지만, 7월 1일부터는 전날보다 100만원 비싼 가격에 자동차를 사야 하는 만큼 극심한 판매절벽이 불가피하다. 개소세 인하는 사실상 하반기 수요를 3~6월로 끌어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해외 판매는 더 암울하다.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을 비롯, 미국과 유럽에도 확진자가 확산되며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이 코로나19 영향권에 속해 있다.


현대차의 3월 수출 및 해외 현지 생산 판매는 23만5323대로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6.2%나 줄었다. 기아차 역시 같은 기간 해외 시장에서 11.2% 감소한 17만5952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한국GM도 북미시장 수요 위축에 따른 제너럴모터스(GM) 본사의 판매 부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월 수출은 2만8953대로 전년 동월 대비 20.8%나 감소했다.


르노삼성도 3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5.2% 감소한 1433대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이달부터는 북미 판매용 닛산 로그 수탁생산물량마저 끊겨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XM3의 유럽 수출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면 수출 물량을 회복할 길이 없는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자료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자료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며 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 게열사에 현금성 자산 확보 지침을 내린 상태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차 등 계열사들은 수천억원에서 수조 원씩의 추가 현금 마련에 나섰다.


한국GM의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도 전세계 사업장에 위기 상황에 대비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현금 보유량을 최대화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임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사무직 직원들의 임금 20%를 내년 1분기까지 지급 유예하는 초강수를 뒀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시설 일부 폐쇄나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기업이 현금 보유량을 확대한다는 것은 생산과 판매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유동성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라며 “당분간은 버티더라도 상황이 장기화되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기업이 하나 둘씩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인 만큼 근로자들의 인식도 임금이나 복지보다는 고용보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회사에 과도한 임금 부담을 안길 경우 상황이 어려워지면 결국 감원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이 발발한 상황에서 노사 교섭과 같은 불확실성을 빨리 제거해주지 않으면 설상가상의 상황에 처한다”면서 “노조는 임금성보다는 고용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사측과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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