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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입력 2019.09.07 07:30 수정 2019.09.07 07:28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만만한 화풀이 대상의 필요성 탓

<하재근의 이슈분석> 만만한 화풀이 대상의 필요성 탓

ⓒjtbc 화면 캡처 ⓒjtbc 화면 캡처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일본 TV가 연일 심층적으로 다룬다고 해서 화제다. 조국을 ‘양파남자’, ‘양파남’ 등으로 묘사하며 최근 한국의 소식을 시시각각 전한다고 한다. 반면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나다르크’ 등으로 묘사하며 조국과의 대립구도로 설명한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보도의 양이다. 뉴스 말미에 국제뉴스 단신으로 잠깐 언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최대 화제만을 소개하는 와이드쇼에 한국 관련 아이템이 연일 선정된다고 한다. 8월 마지막 주엔 일본 방송사 와이드 쇼의 한국 관련 방영 시간이 총 13시간 57분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나왔다.

엄청난 분량의 한국 아이템 방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경제공격 사태로 더 큰 충격을 받은 쪽은 우리인데, 정작 우리는 이런 수준으로 일본에 대해 방송하지는 않는다. 일본에선 조국 관련해서도 학창 시절 사진까지 찾아 방송에 내보냈다. 우리는 일본의 총리급이 아닌 이상 일본의 어떤 정치인이 그들 국내에서 화제가 된다고 해도 그의 학창 시절 사진까지 내보내며 소개에 열을 올리진 않는다.

출판계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서로에 대한 관심의 차이가 선명하다. 한국 출판가에선 딱히 일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에선 한국 관련 출판물이 줄을 잇고 일본신문노련이 혐한 보도 중지를 호소할 정도로 신문잡지에서도 한국 관련 보도가 계속 나온다.

매체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한국 아이템에 큰 관심을 보인다. 한 일본 민영 방송사의 와이드 쇼 PD는 "한국을 다루면 쭉 시청률이 높다. 지금 전국에서 한국 보도 일색인 것은 완전히 시청자가 따라오기 때문이다"라고 아사히에 설명했다.

일본에선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이 많이 나온다. 무시하면 보통 관심도 끊게 된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렇게 한국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걸까?

정말 무시하면 무시하는 발언도 안 한다. 무시하는 발언을 자꾸 하면서 관심을 끊지 못하는 것은 사실은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특히 일본 보수우익처럼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파고든 사람이라면 결국 한국이 자기들 문화의 원류라는 걸 안다. 일본 왕실도 백제와의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이렇기 때문에 일본의 자부심을 세우려 할수록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커지고, 그래서 한국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든 한국을 조롱하고 격하시켜서 일본의 우위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위협감을 주기도 한다. 과거엔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일본의 상대가 안 됐지만 최근엔 급속히 따라잡았다. 특히 전자산업을 비롯해 일본을 제조왕국으로 만든 산업들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가신 한국을 밀어내려는 욕망이 커지면서 관심도 커졌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기분 나쁜 정서도 있다. 나름 평화국가라고 생각하는 일본더러 자꾸 침략자, 전범 운운하며 나쁜 나라로 몰아붙이고 끝없이 배상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짜증이 커지고 이것도 큰 관심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가 ‘엉터리 나라 북한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식의 종편 북한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한국 관련 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만만한 화풀이 대상의 필요성일 것이다. 일본은 한때 세계 최고 경제대국이 된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고꾸라졌고 20년 경제침체를 겪었다. 요즘 저출산 때문에 청년취업 문제는 해결됐다고 하지만, 경제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작년 연말과 최근의 국제적 주가폭락 때 일본 증시가 중국이나 한국보다 더 맥없이 무너진 것이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

이렇게 답답한 상태에선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섣불리 화풀이했다가 상대가 날 들이받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물리적 가해를 당할 염려가 없는 만만한 상대를 찾아 화풀이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한국이다. 과거 독일 사람들은 경제침체의 스트레스를 만만한 유대인에게 풀었었다. 일본은 군국주의 시절에 조선인에게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에도 한국을 그런 대상으로 삼는다.

화풀이 상대이자 원흉이다. 사람은 상황이 안 좋아지면 원흉을 찾는 심리가 있는데, 그게 독일인에겐 유대인이었고 일본 우익에겐 재일한인이다.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국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데 그러면 타국에 대한 적대감도 커진다. 그래서 한국을 조롱하고 폄하하고 공격하는 방송과 출판물을 보며 속풀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한류로 인해 한국에 호의적인 호기심을 가진 층도 있지만 현재 일본 매체의 한국 사랑엔 앞에서 설명한 원인들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웃에 이런 강대국을 둔 것만 해도 큰 족쇄인데, 그 나라와 선린 우호관계까지 이어나가야 하니 우리나라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떻든 일본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지만 일본의 속내에 대해선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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