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대표팀 클린업 트리오 김태균, 최형우, 이대호에게 원한 것은 홈런이 아닌 절실함이었다. ⓒ 연합뉴스
한국 야구가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안은 가운데 리그를 대표하는 각 팀의 4번 타자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한국은 애초 전력 구성에 있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들의 합류 불발과 일부 국내파 선수들의 부상 불참으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다소 부정적인 우려 속에도 클린업 트리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이 잇따랐다. 김태균-최형우-이대호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는 과거 국제대회에 나섰던 중심 타선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태균과 이대호는 과거 국제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을 거쳤고, 최형우는 지난 시즌 리그 최고의 타자였다. 4년 총액 기준 이들의 몸값만 자그마치 334억 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대표팀 부진에 따른 비난의 화살이 이들에게 쏠렸다.
김태균에게는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대회로 기억될 듯하다. 네덜란드전을 앞두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거수경례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첫 경기 이스라엘전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직후라 당시 3타수 무안타에 그친 김태균의 경솔한 행동에 팬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급기야 김태균은 네덜란드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고, 이후 감기 몸살 증세로 응급실에 다녀오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대만과의 최종전에서 10회초 대타로 나와 달아나는 투런포를 터뜨리며 체면치레를 했지만 이미 성날대로 성난 팬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오며 국내 선수 최다 몸값 기록을 경신한 이대호 역시 거듭된 부진으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1타수 2안타에 그친 타격 부진은 물론, 이스라엘과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무기력한 스윙을 가져하며 이대호 역시 비난의 중심에 섰다. 그나마 대만전에서 얼굴 쪽에 아찔한 사구를 허용하고도 고통을 참고 1루로 걸어 나가는 등 프로정신을 발휘해 박수를 받았다.
최형우의 경우 이번 대회 천당과 지옥을 확실히 오갔다.
연습경기 때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린 최형우는 WBC 본 대회 이전 7차례 평가전에 모두 중심타선으로 출장했지만 타율 0.091(22타수 2안타)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끝내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KIA와 4년 총액 100억 원이라는 계약을 체결하며 당시 만해도 역대 FA 최고 몸값을 기록한 최형우의 침묵에 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더욱이 이번 대회 대표팀의 졸전과 더불어 급부상한 리그 거품 논란의 중심에 최형우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전 막판에 나온 그의 절실함으로 성난 팬심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네덜란드전에서 9회 2사후 대타로 나선 최형우는 3루 쪽에 빗맞은 타구를 날리고 1루까지 전력질주하며 박수를 받았다. 호쾌한 장타를 기대했던 중심타자 최형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홈런보다도 값진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어쩌면 팬들이 334억 클린업에게 기대했던 것은 호쾌한 장타쇼가 아닌 승리를 향한 갈망과 절실함이 아니었을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