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없는 WBC? 잊어선 안 될 박찬호·이승엽 눈물

데일리안 스포츠 = 김평호 기자

입력 2017.03.09 00:03  수정 2017.03.09 15:40

연신 무기력한 패배로 헤이해진 정신 상태 도마

병역 특례 없어 동기부여 결여됐다는 지적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 당시 눈물을 쏟은 박찬호. ⓒ 데일리안DB

나름 야구 선진국임을 자처하던 한국 야구가 안방에서 수모를 당했다.

한수 아래로 여겨졌던 이스라엘전 패배는 물론 야구의 변방이나 다름없는 네덜란드에게는 WBC에서 2회 연속 영봉승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이제 한국은 네덜란드에게 패한 대만과 9일 열리는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서울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자존심을 건 탈꼴찌 싸움을 벌이게 됐다. 자칫 대만과의 최종전에서마저 패한다면 최하위가 확정되는 것은 물론 한국 야구사에 또 한 번의 치욕적인 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가 좋지 않다보니 일부 선수들의 헤이해진 정신 상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크게 뒤지고 있음에도 더그아웃에서 웃음을 짓고 있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김태균은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거수경례를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거 국제대회에서 보여줬던 투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1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거나, 아웃을 당하고 분한 감정에 헬멧을 집어던지며 분해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파의 잇따른 불참과 부상 선수들의 합류가 불발되면서 대표팀 전력 자체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투지가 실종된 무기력한 플레이는 단지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다보니 또 거론되고 있는 것이 바로 동기부여 결핍이다. 병역 특례 대상에서 빠지면서 이제 더 이상 선수들에게 WBC는 매력적인 대회가 아니었다. 이는 암묵적으로 각 구단별로 일정 배분해 선수를 선발하는 아시안게임과는 다소 차별화된 모습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사라진 WBC는 선수들에게도 부담스럽다. 아무런 당근책도 없는 WBC에 나가 자칫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시즌 전체를 망칠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나선 대표팀 선수들은 가장 큰 동기부여를 잊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태극마크’다.

과거 선배들은 태극마크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국제대회에 나가 한국 야구의 위상을 알렸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3 WBC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알렸다.

이승엽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기록한 뒤 그간 부진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렸다. ⓒ 연합뉴스

한국 야구에 수없이 많은 영광을 안겨줬던 그도 베이징올림픽 때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는 결정적인 투런 홈런을 기록한 뒤 “부진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역시 마찬가지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2006년 WBC에 나가 한국의 4강 신화에 기여했다. 덕분에 당시 출전 선수들은 병역 혜택까지 받을 수 있었다.

대표팀의 영광을 함께했던 박찬호도 2009년 WBC를 앞두고는 펑펑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팀 내 입지가 불안했던 탓이 컸지만 다시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에 국가대표 은퇴회견까지 열며 국민 앞에 사죄했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모두 눈물을 보인 것은 그만큼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컸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번 대표팀이 보여주고 있는 다소 혼이 나간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KBO리그는 과거에 비해 크나큰 발전을 이뤘다. 지난해 800만 관중 시대를 연 KBO리그는 어느덧 900만 관중을 바라볼 정도로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선수들의 몸값도 이제는 100억을 쉽게 넘어 설 정도로 그 규모 역시 커졌다.

반대로 태극마크에 대한 선수들의 애착은 예전 같지 않아 씁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높은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선수들은 지금의 영광이 과거 대표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선배들의 헌신과 그 노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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