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만해진 인류, 아니 우리에 대한 일격일 수도
“최도영이 밉다.” 친한 분이 나에게 한 말 가운데 하나다. 장준혁이 몰락해가는 순간 <하얀거탑>이 재미가 없어졌다는 요지였다. 물론 현재 <하얀거탑>은 정치드라마를 넘어 법정드라마로 치닫고 있어 의학드라마로써 그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 시청자들이 <하얀거탑>에 열광했던 이유는 분명 최도영이 아니라 장준혁 때문이었다. 최도영은 비현실적인 인물이고 장준혁이 인간적이며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본래 악당, 악녀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집중해 놓은 캐릭터다. 장준혁은 악당의 캐릭터다. 물론 고전극이 아니므로 악당인 장준혁은 절대적인 악인이 아니라 상대적인 악당이다.
우선, 장준혁 편에는 많은 인물들이 따르고 있다. 여기에 권력적 계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잔뜩 그의 뒤를 보아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장준혁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욕망의 정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학술 연구에만 치중하고 아무런 욕심이 없으며, 오로지 참고 인내하고 애정이 넘치는 최도영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니 프로이트의 말대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일 수 있다. 욕망에 대한 부정, 성공에 대한 강한 부정은 성공의 열망을 드러낼 수도 있다.
성공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 인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는데 당연한 관심을 보인다. 부와 명예는 단순이 천박한 욕망이 아니라 하나의 도전 목표가 된다. 그러나 이때 전제 조건은 실력이다. 장준혁은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병원 내에서 치열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쟁투를 벌인다.
장준혁의 카리스마라고 표현되는 역동성은 생명력이다. 장준혁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 하는 식의 가치판단 이전에 많은 시청자들이 최도영에게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은 이 ‘생명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악당에게 주목하는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 역동적 생명력 때문이다. 무엇인가 도전하고 깨뜨리는 것이 무기질 덩어리 세상에서 생명의 본능이자, 인간의 본능이다. 생명의 존재 이유이며 인간이 지닌 존재의 가능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역동성을 보이던 장준혁은 마침내 의료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장준혁을 비난하는 태도에 이르지 않는다. 그 비난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하기 때문이다. 장준혁처럼 심하게는 아니어도 말이다. 더구나 장준혁은 적어도 일부러 환자를 죽이지는 않았다. 자신의 일에 신경을 쓰다가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설마하는 사이 죽음 속에 환자를 방치하게 된다.
그렇게 성공을 위해 날뛰던 장준혁은 암에 걸리고 만다. 결국은 불치병이라니!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이 <하얀거탑>에 역시나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질병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일만은 아닌 점이 있다. 발견된 암은 이미 10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하므로, 성공을 위해 실력을 쌓던 그 순간에 이미 몸에서 암이 자라기 시작한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의 희생을 통해 형성된다. 여기에서 희생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파괴에 가깝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목표를 추구하다보면 자신을 서서히 파괴한다. 불행한 것은 자신의 몸과 영혼이 파괴되는 지도 모르는 게 인간의 한계라는 점이다.
장준혁은 자신의 몸이 파괴되는 지도 모르고 의술과 지위 쟁취에 매달려왔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 날뛰다가 어느 순간 질병의 습격을 받는다. 자신이 의사임에도 자신의 몸 안에 병이 있는지도 모르며 그 병을 발견해도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떼어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 권력과 돈이 있어도 피해갈 수 없다.
드라마 <하얀거탑>은 <인간거탑>에 대한 경종일 지도 모른다. 특정한 악당, 장준혁의 몰락을 통해 인간이 쌓아올린 거대한 문명의 탑이 지닌 허구성을 꼬집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만해진 인류, 아니 우리에 대한 일격일 수도 있다.
『멕베드』의 구절을 잘 알면서도 장준혁도, 우리도 미처 나중에야 깨닫는다.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그 시간 동안에 요란하게 더욱 떠들어만 댄다.
“꺼져라, 꺼져라, 곧 꺼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굉장한 존재인 듯이 떠들어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하다.
그것은 바보가 떠드는
하나의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 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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