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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100편 목표, 한 작품에 승부 걸지 않죠"


입력 2016.05.30 08:05 수정 2016.06.02 09:08        부수정 기자

박찬욱 감독 신작 '아가씨'서 사기꾼 백작 역

"안쓰럽고 연민 느끼는 캐릭터, 최선 다했다"

배우 하정우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분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배우 하정우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분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순간에 흔들려선 안 됩니다. 10년, 20년 후 작품을 보고 천천히 걸어간다면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만 승부를 걸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나하나가 쌓이면 앞이 보일 겁니다."

40편에 육박하는 작품을 찍으며 왕성하게 일하는 하정우(38)가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마들렌'(2002)으로 데뷔한 하정우는 '히트'(2007), '두번째 사랑'(2007), '비스티 보이즈'(2008)'에 출연하다 '추격자'(2008)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멋진 하루'(2008), '국가대표'(2009),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시대'(2009), '러브픽션'(2011),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암살'(2015)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다양한 작품에서 매번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하정우가 이번에는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박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아가씨'(1일 개봉)는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히데코의 이모부 고우즈키(조진웅), 백작에게 고용돼 아가씨의 하녀가 된 숙희(김태리)가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다.

배우 하정우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분해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과 호흡을 맞췄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배우 하정우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으로 분해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과 호흡을 맞췄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영화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필름마켓에서 175개국에 수출돼 종전 한국영화 최다 국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정우는 '용서 받지 못한 자', '추격자', '황해'에 이어 네 번째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파리를 거쳐 갔는데 경유는 참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0년 전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칸 영화제에 처음 방문한 하정우는 경쟁 부문으로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감회가 남다를 법하다.

"아무런 지원 없이 칸에 처음 갔을 땐 정말 열악했죠. 다른 영화 팀 따라다니면서 얻어먹고...윤 감독님과 막차 놓쳐서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거렸을 때 다짐한 게 있어요.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돼서 돌아오자'고요. 10년 후 다시 칸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윤 감독님이 진심으로 축하해줬어요. 제겐 격려가 되는 시간이었답니다."

하정우는 '아가씨'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다.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등을 보며 박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던 그에게 박 감독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암살' 상견례 때 감독님을 처음 뵀는데 10월 15일에 시나리오를 보낸다고 하시더라고요. 정확한 날짜여서 신기했는데 진짜 그날 감독님께 문자가 왔어요. '각색 작업 마쳐서 정우 씨에게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보낸다'고. 시나리오를 출력해서 읽었는데 이야기가 탄탄한, 상업 스릴러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맡은 캐릭터가 극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아가씨'로 스크린에 돌아온 하정우는 배우 생활 목표에 대해 '영화 100편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영화 '아가씨'로 스크린에 돌아온 하정우는 배우 생활 목표에 대해 '영화 100편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시나리오를 읽은 하정우는 그날 저녁 출연을 결정했고 이후 '암살' 촬영차 상해에 다녀왔다가 종로 경양식점에서 박 감독을 봤다. '강남 촌놈'이라는 하정우는 낯선 곳에서, 그것도 이탈리안 음식점이라 서로 뻘쭘했다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역시 소문난 달변가였다.

"분위기가 썰렁해서 제 대학 후배인 전계수 감독을 불렀어요. 하하.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요. 박 감독님이 신인 배우 오디션에 저도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최종에 오른 신인 배우 중엔 김태리가 없었는데 몇 주가 지나서 감독님이 '드디어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박 감독의 말에 하정우는 김태리 사진을 봤고, '암살' 촬영 중 김민희가 아가씨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암살' 마지막 촬영 때는 조진웅으로부터 "나 그거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캐스팅이었다고 배우는 회상했다.

배우들은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해야 했다. 일주일에 네 번 일본어 수업을 받고 레벨 테스트를 거쳤다. 출결도 체크했으니, 압박감이 밀려왔다. 일본어 대사로 녹음한 후 미리 섭외한 일본 배우에게 체크받고, 재차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사기꾼 역을 맡은 하정우는 문어체적인 일본어를 뱉는 데 중점을 뒀다. 시대극이지만 현대인처럼 하는 게 숙제였다.

"캐릭터를 능글능글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관객들에게 일본어 대사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부자연스러울 수 있어서 적정 수준을 맞추기 위해 애썼어요. 후시 녹음을 해서 손봤는데 일본어 대사 반 이상을 수정했습니다. 굉장히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웃음)."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는 또 한 편의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는 또 한 편의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실감 나는 '먹방'으로 유명한 하정우는 '아가씨'에서도 복숭아 먹방을 펼친다. '하정우 복숭아'는 벌써 연관검색어다. '먹방'은 이젠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먹방이 문화로 자리 잡아서 익숙합니다. 하하. 먹방 때문에 몰입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관객들은 그걸 뛰어 넘었더라고요. 이번 복숭아 먹방은 '아가씨'의 별책부록입니다. 물 흘러가는 대로 했지요. 예고편에도 넣었더라고요. 요리 프로그램엔 명분이 없어서 나갈 의향이 없답니다(웃음)."

'허삼관'(2014), '롤러코스터'(2013) 등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박 감독을 통해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박 감독님은 작품을 정성스럽게 다루고, 배우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면도 있으시다. 내가 다음 작품을 연출하다 보면 이런 점들을 되새길 수 있을 듯하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이 제작진, 출연진이 잘 어울릴 수 있게 사적인 자리를 자주 마련해주셨어요. 그래서 다들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죠. 박찬욱이라는 선배를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하정우는 다작 배우다. 100편 출연이 목표란다. 그런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이야기다. 캐릭터는 어딘가 결핍이 있는 인물에 끌린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 국적이 모호한 인물 등이다. '아가씨' 백작 역도 그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자존심은 세 보이는데 안쓰럽죠. '가격을 보지 않고 와인을 주문하는 태도를 갖고 싶다'고 하잖아요. 이름도 고판돌이고...하하. 아이 같은 백작에게 연민을 느꼈습니다."

100편 출연을 목표로 정한 이유를 물었다. 유려한 말솜씨가 빛나는 답변이 나왔다.

배우 하정우는 '아가씨'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박찬욱 감독에 대해 "정성스럽고, 소통할 줄 아는 감독"이라고 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배우 하정우는 '아가씨'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박찬욱 감독에 대해 "정성스럽고, 소통할 줄 아는 감독"이라고 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축구선수도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하면 센추리클럽에 가입하잖아요. 저도 100편 찍으면 강의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그 이상 해야 합니다. 선구안이 뛰어나서 10타수 10안타를 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게 아니잖아요. 작품을 통해 연마하고, 발전하고, 깨달음을 얻는 게 의미가 있어요. 계속 전진하면 완벽에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강의 얘기도 나왔겠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허삼관'과 '롤러코스터'를 연출한 뒤 최동훈, 박찬욱, 김성훈 감독과 작품에서 만났는데 '감독으로서 더 길게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며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하정우는 대본을 공부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와 감독에게서 나온 말들을 틈틈이 적는다고. "요샌 세상이 좋아져서 스마트폰에 저장해둬요. '나에게 보내는 카톡' 기능이 있더라고요.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 보석 같은 얘기가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 걸 적어두면서 시나리오를 채우죠."

작품마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는 그는 "연기력은 증명서로 확인할 수 없다. 연기에 대한 극찬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칭찬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력은 혼자 이뤄낼 수 없기에 항상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하정우는 전시회를 열 만큼 미술에도 소질이 있다. 201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그림값이 1800만원에 이르는 작품도 있다.

배우 하정우는 "영화 '아가씨'는 이야기가 탄탄한 상업 스릴러"라고 소개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배우 하정우는 "영화 '아가씨'는 이야기가 탄탄한 상업 스릴러"라고 소개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를 언급하자 하정우는 손사래를 치며 "민망해서 혼났다"고 했다. "평생을 바쳐 그림에 몰두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기사가 나면 한없이 부끄러워요. 미술 관련 인터뷰를 고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취미 생활이 알려져서 부담스럽고, 미술을 언급하기엔 자격 없습니다."

차기작은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다. 곧 촬영에 들어간다. 촬영 기간은 총 8개월 남짓. 올 하반기엔 '터널'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하루하루가 바쁘다.

"해치울 일이 많다"는 하정우는 감독으로 나설 준비도 하고 있다. 예정된 영화 촬영을 끝내면 최소 3년 후엔 작품이 나올 듯하다고 두 눈을 반짝였다.

"미국 코리아타운에서 사는 한인회장과 교포들을 소재로 했어요. 소재는 블랙코미디고요. 이야기는 50% 정도 생각했는데 계속 구상 중입니다. 후반부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완성되면 작가와 함께 작업하려고요."

하정우를 드라마에서 보고 싶어 하는 팬들도 많다. '히트' 이후 안방 출연이 뜸한 그는 "마음은 열려 있는데 영화만 하다 보니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연기 인생 최종 목표를 물었다. 찰리 채플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단다. 감독을 하는 이유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영화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는 게 좋아요.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작업하고 싶어요. 감독이자 배우로서 노련해지고, 영화가 잘되는 건 덤이고."

영화 흥행 공약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솔직하고 재치 넘치는 답변이 나왔다. "예전에 공약 때문에 저 멀리 해남까지 간 적이 있어서..." 하정우는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으로 답을 대신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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