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은 1차전을 내준 뒤 2~4차전을 쓸어 담으며 3연승을 질주했다. 1승만 더 챙기면 2002-03시즌 이후 13년 만에 창단 두 번째 우승의 감격을 맛본다. 역대 프로농구 챔프전에서 4차전까지 3승 고지에 선착한 팀이 뒤집힌 적은 없다.
이런 흐름은 예상을 벗어난 결과다. 챔프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KCC의 일방적 우세를 예상했다. 안드레 에밋-하승진이라는 막강 원투펀치를 보유한 정규시즌 우승팀 KCC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다양한 변수들이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1차전도 4쿼터를 제외하면 사실상 오리온이 주도한 흐름이었다. KCC가 이번 시리즈 내내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온의 기대 이상 상승세 배경에는 조 잭슨과 이승현이 있다.
정규시즌만 해도 애런 헤인즈 그늘에 가렸던 잭슨은 플레이오프 들어 사실상 헤인즈를 제치고 에이스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헤인즈가 전반의 공격을 주로 책임진다면 승부처인 3~4쿼터에는 잭슨이 해결사로 나서는 패턴이다.
뛰어난 개인기와 돌파력을 겸비한 잭슨은 스피드가 떨어지는 KCC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오리온은 잭슨을 중심으로 한 트랜지션 오펜스와 3점슛으로 KCC의 수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승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현이 골밑에서 하승진과 허버트 힐 등 KCC의 장신 빅맨들을 효과적으로 견제, 잭슨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이승현은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정확한 중장거리슛으로 KCC의 허를 찌르고 있다.
KCC는 높이의 팀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이번 시리즈 들어 오리온에 한 번도 리바운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동선이 겹치고 기동력이 없는 하승진-힐 듀오의 공존 효과가 떨어지는 데다 외곽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과 박스아웃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적극성도 오리온보다 부족하다보니 제공권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경험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 당초 전태풍-하승진-김태술 등 우승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 많은 KCC가 오리온보다 경험에서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선수보다는 감독의 경험 차이가 더 커 보인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감독이라면, 추승균 감독은 올해가 정식 감독 첫해인 초보 사령탑이다.
추일승 감독이 에밋에 대한 효과적인 협력수비와 철저한 속공 전략을 통해 KCC의 약점을 공략하는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온데 비해 추승균 감독은 시리즈 내내 오리온 수비에 대해 효과적인 대처법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에밋에게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전술과 체력 안배 실패는 매 경기 반복되는 문제점이다.
KCC는 1차전 역전승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2-3차전에서 연속 20점차 이상의 완패를 당했다. 심지어 배수의 진을 치고나온 4차전마저도 또다시 승부처에서 대량실점하며 무너졌다. 홈에서 열린 5차전에서 벼랑 끝에 몰린 KCC가 정규시즌 1위팀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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