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마음의 고향, 일본은 바른 역사 가르쳐야"
"나는 가는 곳마다 ´친절(kind)´과 ´미소(smile)´를 외쳤습니다. 지난 60년간을 미소와 친절을 위해 바쳤습니다. 나에겐 적이 없지요. 그게 바로 평화입니다."
지난해 8월 미국의 한 학교를 찾은 가와시마 요코 왓킨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몇 살이지?" "11살이요" "그래 나도 그 때 11살이었단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요코씨는 그 때부터 자신의 일제 말기 피난담을 털어놓았다.
사람들로 뒤덮인 기차와 언니 코, 오빠 히데요의 흑백사진까지 보여주며 자신이 함경북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도망치기까지의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운 체험담을 들려줬다. 바로 ´요코이야기´이다.
그래서 미국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그는 천사같은 평화주의자로 통한다.
전쟁의 더할 수 없는 피해자인 그가 용서와 평화를 외치는건 감동적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한 소녀의 이야기는 미국 학생들에게 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요코는 미국에서 유명 평화운동가로 통한다. ´피스 투모로´ ´피스 애비´ 같은 평화운동단체의 핵심 멤버이다. 그는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스톤워크(stonewalk)´운동에도 적극 나서, 지난해 한여름 불볕더위에 원폭 피해지인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34일간의 도보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요코씨는 무엇보다 한국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나는 한국을 제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남(청진)에서의 삶은 제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이었지요. 늘 그 시절이 사무칩니다" 지난해 한국 언론에 보도된 인터뷰 내용이다.
´요코이야기´ 한글판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화에 대한 책.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내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아이들이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요코이야기´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에게 그는 이렇게 훈계한다.
"사과를 원한다면 제가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하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가 교사가 되든 미화원이 되든 어린 학생들에게 증오를 가르친다면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천사 요코´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인을 ´착한 피해자´, 한국인을 ´나쁜 가해자´로 묘사한 ´요코이야기(far from the bamboo grove)´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래서 미국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전쟁이 나쁘다는데, 일본의 잘못에 대해 요코 자신이 앞장서 사과한다는데, 모두 용서하고 평화롭게 살자는데, 한일간의 역사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게 대다수 미국인들의 반응이다.
그래서 "엄마, 왜 한국 사람들이 착한 일본인들을 못살게 굴었느냐"는 딸의 말에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한인 학부모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심정이다. 밤잠을 설치며 분노할 뿐, 미국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까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학교도 미국 언론도, 다른 학생들도 호의적이지 않다. 심지어 요코는 미국 내 민권운동단체들에 자신이 한국인들로부터 탄압받는 것처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요코는 정말 천사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흔적도 있다.
한 미국 학생이 물었다.
"사가노 여학교의 친구들을 용서하셨나요?"(사가노 여학교는 요코씨가 1945년 일본에 도착한뒤 다닌 모교다. 가난한 요코씨는 이 학교 친구들로부터 ´누더기 인형´으로 놀림받았다고 책에 나온다.)
"네버(never)".
그러면서 이런 일까지 소개한다.
"아직도 ´쓰레기주이´ ´누더기 인형´이란 놀림이 귓전을 울립니다. 1986년 ´요코이야기´를 낸뒤 친구들로부터 동창 앨범에 사진을 싣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거절했습니다. 그건 우표낭비예요. 절대로 응낙하지 않을 겁니다"
´적이 없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요코씨도 60년전 친구들의 놀림은 용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60년전 자신을 죽이고, 강간하려 했던 한국인들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한국 사람들을 일본 여학교 친구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코는 한글판에서 ´1942년 가을 아버지가 일본 총독 주최 만찬에서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뒤 일본으로 소환돼 동경 감옥에서 6개월간 정치범으로 징역을 살았다´고 소개한다.
요코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말한다.
´어렸을 때 나는 조선 친구들과 너무 친해 일본 아이들로부터 ´조선 스파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어느날 너무나 속이 상해 아버지에게 이 일을 말하자 다른 나라 아이들과 우정을 쌓는 일은 참 중요하다고 하셨다. 누가 돌로 쳐죽이려 하더라도 인간의 사랑을 믿는 그 마음만은 잃어선 안된다´
요코는 또 말한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지요. 일본 시민들은 한국인들을 특별히 괴롭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에 힘없이 던져진 거지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드는건 ´나쁜 어른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코가 한국인들을 사랑한다는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요코는 왜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며, 한국인들이 선량한 일본인들을 학대한 것으로 기술했는가.
시베리아에서 6년을 복역한 전쟁 범죄자인 요코 아버지는 정말 한국인들에게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가.
요코는 왜 아버지의 직업을 자꾸 둘러대고, 자신의 출생지도 책마다 다른가.
요코의 아버지가 731부대 간부임을 시사하는 책 내용의 정황과 역사적 사실들은 무엇인가.
요코는 이제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아버지가 그토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해 옥고까지 치르고, 아무런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행적을 자세히 밝히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전쟁통에 일본 소녀들을 못살게 군 아무리 악독한 한국인일지라도 그렇게 훌륭한 요코의 아버지라면 틀림없이 사랑하고 존경할 텐데 말이다.
요코는 늘 이렇게 주장해왔다.
"일본 정부는 일제 때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고통을 준 사실을 역사교과서를 통해 정직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제 그는 이 주장을 실천할 때다. 그 스스로 "요코이야기"의 진실을 밝혀야 할 때다.
평화와 한국인을 그렇게 사랑하는 그가 쓴 책 때문에 11살, 12살, 저 어린 한인 학생들이 놀림받고 있지 않은가?[보스턴·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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