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가 떠나’ 찰튼 깬 루니, 전설의 여정 이제부터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5.09.10 09:30  수정 2015.09.10 09:32

A매치 50골 기록..전설 보비 찰튼 기록 45년 만에 경신

약체들과 대결 골 많아..구겨진 삼사자 군단 끌어올려야

잉글랜드는 루니가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번번이 메이저대회 8강을 넘지 못했다. ⓒ 게티이미지

웨인 루니(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잉글랜드 A매치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

잉글랜드는 9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서 벌어진 유로2016 예선 E조 8차전에서 스위스를 2-0으로 꺾었다.

루니는 후반 39분 라힘 스털링이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A매치 50호골이자 보비 찰튼(49골) 기록을 넘어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완성했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무려 45년 만에 이뤄졌다. 앨런 시어러, 마이클 오언 등 축구종가를 대표하던 전설적인 골잡이들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루니가 달성했다는 점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루니는 17세이던 2002년 에버턴을 통해 프로에 데뷔했고, 이듬해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이 이끌던 잉글랜드 대표팀에 발탁되며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해 9월 열린 마케도니아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A매치 골 역사를 시작했다.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은 지금과 달리 스트라이커 자원이 적지 않았다.

앨런 시어러,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삼사자 군단’의 최전방 계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영국 축구계는 이전의 잉글랜드가 배출한 어떤 공격수들보다도 다재다능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어린 선수에게 열광했고, 그가 잉글랜드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초반의 충격적인 등장과 달리 루니의 축구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거둔 큰 성공과 여론의 관심 속에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던 루니는 많은 사건사고에 연루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잦은 스캔들과 루머 속에 루니에게는 악동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었고, 재능에만 안주하다가 사라지는 그저 그런 선수가 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축구선수로서의 전성기도 부침을 겪었다. 데뷔 초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 역사상 최강의 선수가 될 것 같았지만 정작 소속팀에서 루니가 공격수로 활약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루니를 맨유로 데려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루니의 득점력보다 다재다능함을 더 눈여겨봤다.

맨유에서는 호날두, 테베스, 판 니스텔루이, 베르바토프, 판 페르시 등 항상 쟁쟁한 파트너들이 있었고, 루니에게는 이들을 받쳐주는 조력자의 역할이 더 강조됐다. 루니는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날개, 심지어는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했고, 대표팀에서도 루니를 2선에 기용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대표팀에서도 루니의 경력은 아쉬움이 교차한다. 이제 갓 서른의 문턱에 접어든 루니가 50골을 달성한 것은 물론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루니가 기록한 득점의 대부분이 약체들을 상대로 기록하거나 지역예선과 친선경기에서 올린 골이라는 한계도 뚜렷하다.

잉글랜드는 루니가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번번이 메이저대회 8강을 넘지 못했다. 이는 루니가 유로나 월드컵 등 큰 대회에서 강팀들을 상대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느덧 베테랑의 반열에 접어든 루니는 올 시즌 축구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거칠 것 없던 어린 악동은 이제 어엿한 잉글랜드의 주장이자 간판스타로 거듭났다. 맨유와 잉글랜드는 모두 루니의 1인자 시대를 맞이했다.

A매치에서의 득점 기록과 달리 최근 소속팀에서는 다소 부진한 루니는 이제 맨유의 명가재건을 이끌기 위해 득점포를 재가동해야한다. 유독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루니로서는 이미 본선진출을 확정한 유로 2016에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루니가 진정한 전설로 나아가는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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