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 승부와 관련된 답답한 일이 연이어 터진다는 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방송화면 캡처
동계 훈련을 앞두고 수도권 모처에서 열린 아마추어 농구대회였다.
150cm가 겨우 넘는 저학년부터 200cm에 달하는 고학년까지 섞여 있는 것을 보며 프로농구와는 다른 맛을 느꼈다. 하지만 학생 선수들의 투지와 대비되는 몇몇 지도자들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일부 지도자들은 벤치에서 욕설과 함께 고래고래 코트로 소리를 질렀다. 실수를 저지르는 선수가 나오면 가차 없이 선수 교체를 하면서 들어오는 선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한 지도자는 경기가 끝나자 특정 선수를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체육관 뒤로 불러냈다. 더 의아했던 건 이런 사태가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는데도 그 어떤 학부모 하나 항의를 하거나 자식을 감싸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학생 선수의 상급 학교 진학과 그것을 이뤄내야만 하는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었다. 순수했던 마음을 거둬들이고 이러한 단면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에서 학생 선수가 되는 건 학생이기 이전에 선수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어떻게든 특기생으로 대학까지 가야 성공한 인생이 된다.
그렇다면 학생 선수와 학부모가 택할 수 있는 답은 하나다.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무조건 지도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 지도자에게 잘 보인다는 것은 곧 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각종 대회 수상과 출전 기록을 채우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는 가끔 '승부조작'이라는 어둠의 길로 이어진다.
이미 모 대회 우승으로 특기생 자격을 채운 A라는 학교가 B라는 학교와 특정 대회 결승에서 만났다고 가정하자. 이때 A학교 지도자는 B학교에게 “져주자”고 선수들에게 지시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목표를 채웠으니 B학교 애들 좀 살려주자"라는 말은 그들 사이에서 쉽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들 또한 '대학'이라는 절실함이 저쪽에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가정은 실제 아마추어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졌거나 지금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62개 대학에서 체육특기생 입학경쟁률이 1:1 이하인 경우가 67.5%에 달했다. 이런 수치는 이미 입학자가 어느 정도 내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육특기자는 대한체육회 명의의 지원서 1부를 받아 1개 학교밖에 지원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지상과제인 대학 입학의 경쟁률은 절반을 뛰어넘었다.
비슷한 사례로 몇몇 단체 종목에선 이따금 중요한 경기인데도 후보 선수들이 나오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는 이미 특기생이 되기 위한 출전 자격을 채운 주전 선수들을 빼고 후보 선수들에게도 그 기준을 맞춰주기 위해 지도자가 내보낸 경우다.
이런 모든 관행적인 것들은 스포츠에서 중요한 '정정당당한 승부'라는 가치를 좀먹는 것들이다. 승패가 교환 가능한 가치가 된 환경에서 자란 선수나 지도자는 승부조작에 무감각해지면서 '조작'이 끌고 올 수 있는 불법 스포츠도박에 빠지기 쉽다.
최근 프로농구가 다시 불미스러운 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전창진 감독에서 시작된 승부조작 문제가 국가대표 출신의 김선형(SK)과 오세근(KGC인삼공사)을 비롯한 11명의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로 번졌다. 과거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에 이어 다시 돌아왔다. 오는 12일 2015-16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농구계에 개막 분위기는커녕 관계자들의 한숨만 전해진다.
프로 스포츠에서 승부와 관련된 답답한 일이 연이어 터진다는 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경찰이 범인 찾듯 스포츠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게 보기 싫다면 그 원인이 되는 연결고리부터 끊어내는 게 의식 있는 스포츠계 종사자들이 할 일이다.
어떠한 문제가 터졌을 때 개인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건 쉽다. 그렇게 따지면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도 그저 배고픔 따위 하나 참지 못한 좀도둑이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치워버릴 수 있다. 스포츠계가 갖고 있는 구조에서 승부조작이나 스포츠도박에 연결될 수 있는 문제점은 없는지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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