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의 '화장'은 김호정 음모노출 영화가 아니다

민교동 객원기자

입력 2015.03.26 09:43  수정 2015.08.12 10:16

절절한 의미-함축성 담은 핵심 장면

19금 발언에만 급급한 인식 아쉬워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이 김호정의 음모 노출로 엄청난 화제를 양산하고 있다. ⓒ 영화 화장 스틸

영화의 특정 장면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으며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논란이 가열되고 화제를 양산되는 만큼 흥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해당 영화 속 논란의 장면에 대해선 매스컴을 통해 접했지만 그 영화를 직접 보진 않은 이들이 훨씬 많은 경우가 종종, 아니 자주 생긴다.

예를 들어 배우 라미란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베드신이 그렇다. “영하의 날씨에 방산시장 길에서 공사(베드신 촬영에서 신체 특정 부위에 테이핑을 하는 것)도 없이 베드신을 촬영했다”고 밝혀 화제가 된 영화 ‘댄스타운’이 그렇다. 라미란의 말만 듣고 보면 상당한 노출 수위의 베드신이 상상되지만 실제 문제의 베드신은 노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데다 멀리서 찍은 장면으로 처절한 영화의 분위기와 캐릭터를 살려주는 장면일 뿐 일반적인 베드신은 아니다. 다시 말해 야한 장면은 아니라는 의미다.

영화 ‘화장’이 요즘 그렇다. 4월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은 지난 17일 기자시사회를 갖고 매스컴에 공개됐다. 이미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차례 공식 상영됐으며 기자 간담회도 열린 바 있다. 그 당시에도 김호정의 음모 노출이 엄청난 화제를 양산했으며 기자시사회를 통해 또 다시 김호정의 음모 노출이 엄청난 화제를 양산하고 있다.

문제의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된 것은 임권택 감독의 발언 때문이다. 이미 영화를 최초로 국내에 개봉한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문제의 장면이 화제가 됐던 터라 임권택 감독이 이날 기자시사회에서 관련 발언을 했다. 임 감독은 해당 장면이 영화 ‘화장’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겨운 장면이었다고 밝히며 배우 김호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임 감독의 관련 발언은 기자시사회 마지막에 부분에서 나왔다. 사회자가 감독과 배우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진행하자 임 감독이 문제의 장면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가장 힘들게 찍은 장면이 바로 김호정과 안성기가 욕탕에 있는 신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반신으로 찍으려 구상했었고 그렇게 찍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부인을 수발하는 과정이었는데 두 배우의 상반신만 나올 지라도 관객들이 충분히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찍고 보니 상반신만 나오는 반신으로는 관객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감이 잘 살지 않더라. 그렇게 해선 내 의도가 전달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히 김호정에게 이해를 구했다. 두세 시간 생각을 해보자고 얘기했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김호정이 흔쾌히 내 뜻을 받아들여줬고 그렇게 그 장면이 완성됐다. 이 자리를 빌려 배우 김호정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임 감독이 말한 반신은 반라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욕실 변기에 앉은 김호정과 그를 수발하는 안성기의 모습을 상반신 위주로 촬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해당 장면을 담아낸 홍보용 스틸 사진의 구도로 해당 장면을 촬영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김 감독의 말처럼 해당 장면은 결국 반신이 아닌 두 배우의 전신이 나오는 전라신으로 완성됐다. 이런 임 감독의 얘기에 대해 김호정이 바로 화답했다.

“감독님의 말에 정말 감격스럽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그 장면이 가장 강렬했다. 힘들지만,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내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내가 새로운 마음을 먹게 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영화 찍고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한 용기 북돋워줬다.”

문제의 장면은 말 그대로 영화 ‘화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김호정의 음모 노출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함축성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호정의 얘기처럼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하던 한 기자는 “욕실 장면을 보며 울컥해 눈물이 났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욕실 장면은 투병 중인 아내와 이를 간병하는 남편의 일상을 함축적이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뇌종양이 재발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는 아내(김호정 분)와 회사를 다니며 퇴근하면 아내를 오 상무(안성기 분)는 헌신적으로 간병한다.

해당 신은 투병 중인 아내가 침대에 누워 옷을 입은 채 대변을 본 이후 장면이다. 오 상무는 아내를 욕실로 데려와 변기에 앉힌 뒤 옷을 벗기고 샤워기로 아내의 몸을 닦아 준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만큼 처절한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아내, 그리고 아내의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헌신적인 간병을 하는 오 상무의 모습을 임 감독은 이 강렬한 한 장면으로 다 담아내려 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음모 노출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단순히 투병 중인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남편의 모습만 감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에게 여자가 아닌 환자가 된 상황을 힘겨워하는 아내의 심리, 헌신적으로 아내를 간병하는 오 상무의 진심 어린 모습, 그리고 임 감독이 이 장면의 마지막 부분에 더욱 서글프고 냉정한 현실을 더해 두었다. 필자 역시 그 장면이 매우 강렬했는데 그 장면에서 나오는 아내의 마지막 대사에선 순간 울컥했었다.

다시 말해 영화의 표현 수위만 놓고 보면 음모 노출이니 가장 높은 수위의 장면이지만 전혀 야하지 않은, 오히려 너무 슬프고 서글픈 장면이다. 지금 상황에서 포털 검색어에 뜨는 자극적인 검색어만으로 김호정의 음부 노출 장면을 받아들인 이들이 실제로 영화 ‘화장’을 보며 문제의 장면을 접하게 된다면 필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 영화에선 가장 높은 수위의 노출을 담은 영화지만, 이만큼 절실하고 반드시 필요한 노출을 다른 영화에선 절대 접해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껏 영화가 영화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온 노출 수위에 대한 논란을 거장 임권택 감독이 단 번에 뒤바꿔 버렸다. 영화인의 표현의 자유보다 관객에게 유추하도록 강요하는 게 아닌 실제로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노출, 에로티시즘의 측면이 아닌 몸뚱이라는 인간의 실체를 정면으로 다가가는 노출이다.

사실 영화 ‘화장’은 김호정의 노출로 주목받을 영화가 아니다. 배우 김호정의 노출 투혼은 분명 박수갈채를 받아야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이자, 소설가 김훈의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측면에서 더 주목받아야 마땅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실제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할 수 있는 이들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나중에 TV에서 방영된다면 문제의 장면은 모두 삭제될 것이다. 결국 문제의 장면을 실제로 보며 그 절절함에 다가가지 못한 채 포털검색어에 띄는 자극적인 단어를 중심으로 한 논란과 화제만으로 이 영화를 기억할 이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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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연예 기자 (spoten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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