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내가 죽여도 된다고? 법도 외면하는 비속살해

김지영 기자

입력 2015.03.21 09:58  수정 2015.03.21 10:06

갓태어난 아기 살해해도 최고형은 고작 10년

효도중시 문화가 형법 형량 좌우 "개정해야"

충남 아산경찰서는 자신의 어린 자녀 2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영아 살해 및 사체 유기)로 이모(39·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이 아산시 염치읍 한 야산에서 영아의 사체를 찾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경기 파주시에서 일곱 살 난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3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은 시내의 한 모텔에서 자신의 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고 112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이 여성은 사채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난 6일에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자식을 살해하려 한 30대 여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이 여성은 지난 1월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뇌성마비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자, 한 공원의 장애인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아들을 수 분간 물속에 넣어 살해하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경남 거제시에서 30대 남성이 차 안에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차 안에서는 수면제와 술병, 흉기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남편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정한 사례가 늘고 있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등으로 아동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부모에 의한 범죄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자식에 대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배경으로는 양극화 심화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자식에 대한 인식 변화가 지적되고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식들까지 살해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비관 때문”이라며 “자신만 죽어서 자식이 혼자 남겨지면 더 고생할 것이다, 이 사회가 결코 내 자식을 돌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반대로 자식만 살해하는 경우는 자식을 자신에게 부담이 되는, 몸에 지니고 다니면 불편한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자식은 인격체나 자식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처럼 기르다가 귀찮으면 버리거나 죽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유는 다르지만 자식을 별도의 인격체로,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지 않는 심리가 비속살해라는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동 인권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법조차 아동의 살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형법은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행위(제250조 2항)에 대해 일반적인 살인(최소 5년 이상 징역)보다 높은 형량(최소 7년 이상 징역)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1995년 12월 29일 개정을 통해 완화한 형량으로, 이전까지는 범행 동기나 계획성, 방식과 상관없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반면, 자식을 살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 오히려 영아를 살해했을 경우(제251조)에는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으로, 일반적인 살인과 비교해 형량이 가볍다. 특히 이 조항에는 최저형량이 없기 때문에, 생활고 등 범행 동기가 참작돼 상급심에서 형량이 감경됐던 판례가 많다.

이 같은 법률은 인륜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문화가 반영된 결과이다. 비슷한 법률로는 불고지죄 특례조항(제151조 2항), 동거 혈족 및 친족에 대한 절도·사기·횡령·장물에 대한 형 면죄 조항(제328조) 등이 있다.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우리 형법은 1950~196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그때만 해도 효도가 강조되고 자녀는 부모의 훈육을 따라야 하는 풍토가 강했다”며 “법에는 시대상이 반영된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범죄를 가중처벌을 하는 별도의 조항이 마련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의원은 “그런데 요즘엔 시대가 변했다. 핵가족이 늘면서 자식의 독립적 삶과 인권이 중시되고 있다”며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형법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회의원들이 뚝딱뚝딱 처리할 문제는 아니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존속살해 규정을 두고 있는 상당수 국가에서는 비속살해 규정도 둬 존·비속을 불문하고 혈족에 대한 범죄를 무겁게 다루고 있다.

최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존속살해와 마찬가지로 비속살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처벌이 둘 다 강해야 한다”며 “특히 자기결정권이 없는 영아살해는 가장 무거운 범죄로 취급해 그에 상응하는 형량을 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는 비속살해 형량에 대해 구체적인 검토를 못 해봤는데, 향후에라도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법안 발의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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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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