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가너가 보여준 ‘가을의 전설’ 덕분에 커쇼는 정규시즌 사이영상과 MVP를 독식한다 해도 머쓱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 게티이미지
2014 메이저리그(MLB)는 캔자스시티의 돌풍을 잠재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20102012년에 이어 또 짝수 해 우승을 차지한 샌프란시스코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샌프란시스코 좌완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25)는 화려한 ‘가을의 전설’을 남기며 이번 포스트시즌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범가너가 이번 가을 보여준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역대급’이었다.
NL 챔피언십에서 만난 세인트루이스와 월드시리즈에서 싸운 캔자스시티는 범가너 벽을 넘지 못해 무릎을 꿇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시리즈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해 모두 승리한 범가너는 올해 포스트시즌 7경기 등판, 4승1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1.03이란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특히,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거둔 완봉승은 2003년 조시 베켓 이후 11년 만의 기록이다. 불과 이틀 쉬고 등판한 7차전에서는 5회부터 나와 남은 이닝을 홀로 책임지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완성했다.
포스트시즌 기간 범가너를 제외한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선발투수들은 11경기에서 고작 43.1이닝 소화하며 1승3패 평균자책점 6.23으로 부진했다. 범가너 한 명이 다른 선발투수들이 던진 것보다 훨씬 많은 52.2이닝을 책임졌다. 이는 2001년 커트 실링의 48.1이닝을 넘어서는 단일 포스트시즌 역대 최고기록. 샌프란시스코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범가너의 원맨쇼라는 찬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범가너의 이런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류현진 소속팀 LA 다저스를 응원하는 팬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이번에 범가너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다저스 팬들이 ‘슈퍼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26)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커쇼는 올해 역시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실망을 안겼다. 세인트루이스와의 디비전시리즈 2경기 등판, 12.2이닝 11실점의 난조로 2패만 기록했다. 라이벌 팀 에이스 범가너가 큰 경기에 강한 강심장의 이미지를 굳히는 동안 커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커쇼는 데뷔 후 포스트시즌 통산 11경기 1승5패 평균자책점 5.12로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범가너의 가을잔치 통산성적(7승3패 평균자책점 2.14)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초라하다.
커쇼가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하는 동안 범가너는 세 번의 월드시리즈에서 4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25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범가너의 평균자책점은 월드시리즈에서 2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 가운데 역대 1위다.
범가너 데뷔 후 샌프란시스코는 10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모두 승리했고, 그 결과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다저스는 커쇼가 데뷔한 후 치른 6번의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두 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특히, 올해 디비전시리즈와 작년의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패배는 커쇼의 부진 탓이 컸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사이영상과 MVP는 철저하게 정규시즌 성적만을 기반으로 그 수상자를 결정한다. 페넌트레이스 종료 직후 기자단 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월드시리즈 이후 발표한다. 따라서 포스트시즌의 임팩트가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커쇼는 사실상 2014시즌 사이영상 수상이 확정된 상황이다. 정규시즌만 놓고 봤을 때 범가너는 커쇼는 물론 아담 웨인라이트나 조니 쿠에토 등에게도 뒤진 4등 투수였다. 그러나 범가너는 이번 가을을 지배하며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기록을 모두 합하면 커쇼의 2014년 성적은 29경기 등판 211이닝 258삼진 21승 5패 평균자책점 2.13이 된다. 범가너는 40경기(39선발)에 등판해 270이닝 264삼진 22승 1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했다. 등판 횟수와 이닝,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상을 감안했을 때, 범가너 활약이 커쇼에 비해 부족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범가너가 보여준 ‘가을의 전설’ 덕분에 커쇼는 정규시즌 사이영상과 MVP를 독식한다 해도 머쓱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규시즌에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가을만 되면 고개를 숙이는 슈퍼 에이스와 큰 경기만 되면 펄펄 나는 에이스급 투수의 희비가 엇갈린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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