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가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서며 한국 리듬체조의 새역사를 썼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손연재(20·연세대)가 마침내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리듬체조 여왕으로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렀다.
손연재는 2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승에서 곤봉(18.100점)-리본(18.083점)-후프(18.216점)-볼(17.300점) 4종목 합계 71.699점을 획득, 중국의 덩썬웨(70.332점)를 1.367점 차로 제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한국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금메달을 목에 건 손연재는 체육관에 운집한 수많은 홈 팬들과 함께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경기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날 손연재는 홈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우려하는 주위의 목소리를 일축하며 차원이 다른 클래스의 연기를 선보였다. 덩썬웨와의 치열한 승부가 예상됐지만 승부는 예상 외로 싱겁게 갈렸다.
16명의 결선 출전선수 가운데 7번째 연기 순서를 받은 손연재는 첫 연기였던 곤봉에서 18.100점을 받아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상징과도 같은 18점대의 점수를 가장 부담스러운 첫 순서에서 받아냄으로써 스스로 혹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부담감과 긴장감을 털어버렸다.
더군다나 곤봉은 과거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손연재의 발목을 잡았던 취약 종목이었다. 손연재의 연기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리본에서 덩썬웨와의 점수 차를 1점 가까이 벌린 손연재는 드디어 후프 종목을 마주했다. 불과 며칠 전 손연재에게 생애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안긴 ‘영광의 종목’이었다.
손연재의 후프 연기는 기대대로였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높은 난도의 연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소화해낸 손연재는 18.216점이라는 이날 결선 최고점을 받아냈다. 후프 점수로 손연재는 금메달 획득을 사실상 결정지었다.
볼 연기를 남겨두고 있었지만 덩썬웨가 20점 만점을 받지 않는 이상 손연재의 점수를 넘어서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손연재는 볼 연기 막판 마지막 고난도 연기를 펼치다 수구를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이날 손연재가 보여준 첫 실수였다.
수구를 놓치는 실수는 리듬체조에서 나올 수 있는 실수 가운데서도 제법 큰 실수였지만 손연재는 17.300점이라는 비교적 준수한 점수를 받아냈다. 다른 세 종목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점수였지만 특별한 실수 없이 볼 연기를 펼친 덩썬웨의 점수(17.400점)보다 불과 0.1점 낮은 점수였다.
덩썬웨가 마지막 리본 연기를 남겨뒀을 때 손연재의 점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19점대 점수를 받아야 했다. 리본 연기를 위해 매트 위에 선 덩썬웨의 표정은 금메달에 대한 미련을 이미 지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리본에서 17점대 후반의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아 든 덩썬웨는 은메달리스트가 된데 만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손연재는 인터뷰에서 “너무나 많이 긴장했다”고 털어놨지만 이날 손연재의 연기에서 어떤 부분도 그와 같은 극도의 긴장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 동안 선수로서 숱한 무대에 서는 가운데 중요한 승부처마다 발휘됐던 손연재 특유의 강인한 승부근성은 이날도 어김없이 발휘된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의 몸으로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고, 16살의 나이로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동메달 획득, 2012 런던올림픽 개인종합 5위, 월드컵 시리즈 첫 개인종합 우승과 11회 연속 메달 획득, 2014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4위, 그리고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과 개인종합 금메달까지.손연재가 걸어 온 길은 그대로 한국 리듬체조의 역사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손연재는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한국 리듬체조를 아시아 리듬체조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이 같은 손연재의 위대한 성취는 동양인으로서 신체적인 핸디캡과 동양인 선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온갖 편견과 억측, 일부 몰지각한 누리꾼들의 악의적인 비난 공세 등을 모두 극복하고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 박수갈채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손연재에게 남은 목표는 2년 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달을 따내는 것.
2012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을 때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톱10’에만 들어도 성공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로 하고 손연재는 개인종합 5위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다. 리우 올림픽 메달 획득이 손연재에게는 결코 신기루 같은 꿈이 아니다. 물론 그와 같은 성과를 이루는 것이 공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그리고 이후 한 동안은 손연재가 성취의 달콤한 열매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연재가 누리고 만끽할 ‘성취열매’의 맛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그 달콤함은 손연재에게 2년 뒤 리우 올림픽 메달획득이라는 또 하나의 성취를 위한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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