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생들 빛이 되어준 '여명'의 10년 뭘 가르쳤나

하윤아 기자

입력 2014.10.12 10:09  수정 2014.10.12 10:13

'민주시민 첫 걸음' 남한 사회 적응 위한 교과목 배치

이흥훈 교장 "우리가 포기하면 잃을수도 있는 애들..."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여명학교 전경. ⓒ여명학교

해를 거듭할수록 탈북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공교육에서 다뤄지는 탈북 청소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교육부가 공개한 ‘2014년 탈북학생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북학생 수는 지난 2008년 966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올해에는 총 2183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담임교사 중심 멘토링 사업 △탈북학생 표준 보충교재 개발 사업 △지도교사 교원 연수 등을 중심으로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교육부의 탈북 청소년 교육 사업은 전문성이 떨어져 그 효과가 미비하고, 특수한 환경에 놓인 탈북 학생들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관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바다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하 성통만사) 사무국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교육부에서 탈북학생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문성 있는 교사가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담임 교사에게 업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 국장은 “탈북학생들은 가정환경도 좋지 않고 학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탈북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데 이런 것들이 선생님들에게 추가적인 업무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라며 탈북 교육의 현 상황에 대해 꼬집었다.

그는 “탈북학생들의 특수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탈북학생에 대한 교육이나 교재를 받는다고 해서 이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니 결국 (탈북학생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일까. 최근 들어 탈북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안학교나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진로를 변경하며 일반학교를 중도 탈락하는 탈북학생 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조사 결과 2010년 중도 탈락한 탈북학생 56명 가운데 진로 변경을 이유로 든 학생은 총 6명(10.7%)이었던 데 반해, 올해 51명의 중도 탈락 탈북학생 중 대안학교 등으로 진로를 변경한 학생은 총 12명(23.5%)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대안학교에서는 이들 탈북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학력 인정받는 대안학교 '여명' 현장가보니...

비가 내리던 지난달 29일 오후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여명학교’를 찾았다. 탁구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층 멀티실에서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문틈 사이로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앳된 얼굴에 순수한 미소를 머금은 학생들은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다.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시설 가운데 최초로 정규 학교 인가를 받은 여명학교가 올해로 개교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여명학교는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어렵게 남한에 온 탈북 청소년들의 생활 적응을 위한 다양한 교육 사업을 진행해 우리 사회의 주목을 받아 왔다.

지난 2004년 개교 당시 들쥐와 바퀴벌레들로 고생하던 서울 봉천동 건물에서 서울 중구 남산 자락 지금의 건물로 오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명학교는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날 교장 집무실에서 ‘데일리안’과 만난 이흥훈 여명학교 교장에게 개교 10주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 교장의 첫 마디는 “여명학교 10년이라는 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는 말이었다.

이 교장은 “지난 10년을 되돌아볼 때 학생들의 변화가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은 탈북 청소년들이 여명학교에서 공부하며 자극이 될 만한 여러 경험을 한 뒤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훈화할 때 ‘나의 인생 목표를 가지고 산다’, ‘포기하지 않는다’, ‘한걸음 전진한다’는 세 가지를 항상 강조한다”며 “얼마 전 간호계열을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이 찾아와 ‘교장선생님이 포기하지 말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 포기하지 않고 잘 하겠다’고 했는데 참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 일화를 전했다.

이어 이 교장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가 포기했더라면 잃었을 애들인데 붙들어주니 여기까지 왔다”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실제 여명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번 10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연단에 올라 “여명학교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학교”라며 교직원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를 듣던 교사 중 한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고, 기념식은 눈물바다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교장은 여명학교가 극복하고 도전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을 마련하거나 학교를 운영하는 것에는 교사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이 너무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전에 비해 학교 규모가 많이 커졌지만 여전히 운동장이나 실험실, 실습실 등 학생들의 교육이나 활동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라며 “하드웨어를 더 갖춰 통일 한국의 청소년 교육을 위한 모델학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남·북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교과목 배치…‘정체성’ 찾아가는 교육

이흥훈 여명학교 교장. ⓒ데일리안
이 교장은 지난 10년간 여명학교의 가장 큰 변화로 ‘교육 내용의 체계화’를 꼽았다. 외부적인 성장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튼튼한 교육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실제 여명학교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교과들을 체계화시켜 교육 과정에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탐구 영역 사회 교과군에 특징적인 교과목들이 주로 배치됐다.

여명학교 측이 제시한 교육과정편성 계획에 따르면 고교 1, 2, 3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세계와 우리’, ‘민주시민 첫 걸음’, ‘열린사회 통일한국’, ‘남북이 하나되는 한국사’, ‘남북이 하나되는 근현대사’ 등의 사회 과목을 배운다.

1학년 학생들의 경우 ‘사회생활 첫 걸음’이라는 특성화 교과 과정으로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해당 교과목의 학습 자료는 전문 교사의 손을 거쳐 수준별 맞춤 교과서로 제작됐다.

여명학교는 이러한 교과목을 통해 학생들에게 남한과 북한의 사회, 체제, 역사를 스스로 비교하고 차이점을 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남한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사회나 체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3학년 2반 담임을 맡고 있는 강수산 여명학교 교사(35)는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정체성의 혼란”이라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학생들은 오랜 시간 일관된 사고를 하도록 훈련돼왔기 때문에 시각을 넓혀주는 교육을 통해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강 교사의 설명이다.

강 교사는 “이곳 여명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학생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해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홀로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들이 대학에 가서 또 직장에 가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명학교는 올해 ‘건강한 여명학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탈북 과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한 상처를 치유하고 심신을 회복하기 위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후원과 별도의 예산을 책정 받아 외부 의료 협력 업체에서 학생들의 신체 정신 건강을 진단하고,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한다. 건강검진이나 내과·치과 치료를 통해 신체적 건강을 회복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물론, 미술이나 놀이 치료로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맞춤 교육과정과 지원 프로그램으로 여명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5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한 뒤 5년이 지난 2010년에는 17명을, 그리고 올해 2월에는 2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총 146명의 졸업생 가운데 86%인 125명가량이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2009년 여명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이모 씨는 “여명학교에서 꿈을 찾게 되었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며 “여명학교는 외로울 때 가족이 돼 주었고, 스승이 돼 주었고,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돼준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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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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