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박태환이 보여준 투혼은 깊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박태환(25·인천시청)은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박태환은 21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자유형 2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23일 자유형 400m 결승에서도 3분48초33의 기록으로 쑨양(3분43초23·중국), 하기노(3분44초48·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쑨양과 하기노가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 갖는 동안 박태환은 3위에 머물러 아쉬움을 더했다. 2006 도하 대회와 2010 광저우 대회에선 두 종목 금메달은 모두 박태환의 몫이었다. 3연속 메달 획득에는 성공했지만 끝내 3회 연속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박태환은 400m 결승 직후 인터뷰에서 “언론들의 관심이 너무 집중되고 한국에서 대회가 열리다 보니 사인 요청을 많이 받는 등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내가 이겨내야 할 문제였지만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앞서 마이클 볼 코치가 박태환에 대해 “홈에서 이런 국제대회가 열린 적이 없어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만 힘이 많이 들어간다”며 “부담감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고 언급한 내용과 같다.
결국, 홈그라운드라는 환경이 박태환에게는 어드밴티지가 아닌 핸디캡으로 작용한 셈이다. 심리적인 부담감을 차치하고 박태환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여러모로 힘든 대회였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정점으로 박태환은 기량 면에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수영 외적인 부분에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에서 최악의 오심으로 겪은 실격 해프닝을 딛고 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했지만, 대회 이후 스폰서 계약이 만료되고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 준 전담팀이 해체됐다.
새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는 기간이 이어지면서 훈련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 대한수영연맹과의 이런 저런 마찰로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는 등 선수로서 운동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제 한 시대를 한국 수영의 간판이자 자존심으로 자리해 온 박태환의 존재감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아직 박태환의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것도 아니고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박태환에게는 바로 지금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시기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타겟은 역시 2년 후에 열리는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이 될 것이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되는 박태환에게 베이징이나 런던 대회에서의 박태환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최고의 기량으로 세계를 제패한 이후 2009 로마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었지만 박태환은 이내 부활했다. 잠시 방황이 있었지만 박태환이 다시 마음을 다잡았을 때 단숨에 세계 정상의 자리로 복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른 상황이다. 2년 뒤 리우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기대해 볼 수 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 박태환은 더 이상 한국 수영의 슈퍼맨이 아니다. 이미 팬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박태환에 대한 시선을 바꾼 듯하다.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지만 박태환에 대한 여론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이제 팬들이 박태환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전과 좀 다른 모습이다. 박태환 스스로 한국 수영의 슈퍼맨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대신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규혁이나 테니스의 이형택 같은 존재로 오래도록 팬들과 후배들 곁에 남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을 이끌고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팀의 리더로서 활약하는 박태환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는 기쁨이고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세계 수영의 변방 한국 출신의 선수로서 생애 첫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스트로크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부정출발로 실격 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10대 소년이 몇 년 후 당당히 올림픽 챔피언이 되는 과정은 놀라웠다. 특히 잠시 방황으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한 그가 다시 재기해 세계 정상에 서는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했고,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이제 박태환은 팬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추억과 감동을 만들어 주는 과정에 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한국 수영의 불사조로서 박태환의 새로운 비상을 알리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그리고 그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영선수로서 박태환의 활약에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