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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로 일반고 위기? "자사고를 배우자" 변신 열풍


입력 2014.09.25 07:21 수정 2014.09.25 07:29        목용재 기자

<심층취재-자사고 폐지 논란을 파헤친다③>

일반고, 자사고의 '자기주도적' 학생 육성 프로그램 '벤치마킹'

"자사고 프로그램, 모범케이스로 전국 학교에 확산되는 계기 마련"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폐지'를 목표로 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행보는 분주하기만 하지만 정작 대상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는 여전히 의문이다. 도대체 자사고 폐지의 근본적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유다. 당장 진학을 결정해야 할 중3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에 빠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취소한다고 하고 교육부는 반대 입장이다.

문제는 '자사고 폐지'만이 공교육 활성화의 토대가 되느냐에 교육 전문가들도 학교 현장도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이다. 차분히 공교육 살리기의 대안에 머리를 맞댄 것도 아닌 '자사고'를 재물로 하는 조희연 교육감의 밀어부치기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데일리안'은 자사고를 둘러싼 논쟁, 자사고 폐지가 공교육 살리기의 해법인지, 그렇다면 조희연 교육감이 추진하는 혁신학교는 무엇인지, 아울러 자사고 현장을 찾아 현재 자사고 폐지 논쟁을 살펴보았다. < 편집자 주 >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에서 서울자사고연합 학부모회 회원들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자사고 폐지를 결사 반대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자사고 폐지 반대 집회’에서 서울자사고연합 학부모회 회원들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자사고 폐지를 결사 반대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가 일반 고등학교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는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의 '오판'은 확고하다.

자사고를 폐지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일반고들은 이런 우려와는 달리 자사고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자사고에서 시행되고 있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교육프로그램·운영방식 등을 일반 고등학교 실정에 맞춰 적용시키거나, 자사고에서 활성화된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등 경쟁력 있는 일반 고등학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여전히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자사고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지만 자사고의 존재로 인해 우수한 프로그램·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과거부터 제기되 온 일반고·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영남 영훈고등학교(일반고) 교장은 12일 ‘데일리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사고가 자율성이 보장되다보니 교육과정과 편성, 운영 면에서 일반고 보다 창의적일 뿐만 아니라 입시에도 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많다”면서 “영훈고도 주변 자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자사고를 통해 벤치마킹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지역 한 일반고 교장도 “일반고의 위기라는 이유로 자사고를 인위적으로 폐쇄하는 것은 반대”라면서 “자사고는 등록금을 일반고의 세배수준으로 지불하고 있다. 때문에 그만큼의 교육적 이점을 살리지 못한 자사고는 스스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장은 “모범적인 일반 고등학교들은 자사고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면서 “자사고와 일반고는 출발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의 역량 내에서 자사고의 장점을 최대한 적용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훈고의 '글로벌창의연구세미나반'…"자사고 프로그램 벤치마킹"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영훈고등학교(교장 황영남)는 자사고의 자기주도적 학습 프로그램 등을 벤치마킹해 9월부터 ‘글로벌 교육과정’을 신설했다. 신입생 시절부터 각자의 적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학생들로 하여금 미리 선택, 이수하게 함으로써 대학교 진학 시 원하는 학과를 미리 탐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영훈고는 학생들 가운데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과 열정이 강한 학생을 선발, ‘글로벌 창의 연구세미나반’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일반고 학생들도 R&E(research & education, 과제연구) 형식의 심화토론이나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영훈고등학교는 9월부터 자기주도적인 학생을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글로버랑의연구세미나반'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영훈고등학교 영훈고등학교는 9월부터 자기주도적인 학생을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글로버랑의연구세미나반'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영훈고등학교

정대성 영훈고 교육과정부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일반학생들도 특목고나 자사고 못지않게 R&E형식의 심화토론이나 연구 활동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연구세미나를 통해 국제적 인재를 양성, 미래 국가와 세계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창의연구세미나반’은 문학, 수리통계, 국제, 역사, 과학 등 5가지 분야에서 각 소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참여하는 2인 1조의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주도적 심화토론을 실시하도록 유도한다. 이 같은 결과물은 보고서의 형태로 작성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학기말 교내 간행물로 만든다. 특히 학생들의 연구 성과를 ‘성적화’하지 않고 활동내역을 생활기록부에 이를 기록, 대학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에서 유리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8명의 교사는 직접적인 개입은 지양하고 간접적 ‘지원사격’ 역할만 한다. 일례로 ‘자연재해’라는 소주제의 연구과제에서 국어 담당 교사는 자연재해와 관련된 문학작품자료를, 수학교사는 자연적 현상과 관련된 확률이나 수치 등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이 자료를 토대로 학생들은 추가적인 자료수집, 토론 등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영훈고는 오는 19일부터 ‘글로벌창의연구세미나반’을 본격 가동한다.

‘인간과 환경(개발과 보존)’이라는 대주제 아래 △탄소배출권 거래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의 역사 △환경관점에서 본 휴머니즘(문학적 분야) △바이러스 창궐의 시사점 △일본 원자력 발전소의 파괴와 인간에게 피해를 미치는 방사선 누출 수치(수리통계적분야) 등의 소주제를 설정, 연구세미나를 진행한다.

황영남 교장은 “자사고에서는 정규과목으로 과제연구 같은 프로젝트 수업이 활성화돼있다”면서 “일반고에서는 이를 정규과목으로 운영하기 힘들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방과 후 교실 형태로 운영한다. 학생들의 활동 내용으로 기록해주고, 이 같은 프로그램을 학생들 스스로 역량화 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장은 “이런 활동을 벌이다보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서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원하는 인재상을 미리 키워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동아리' 활성화된 세종고…"입시에 도움, '자기주도적' 학생 육성 1석2조"

서울 강남구의 세종고등학교는 일반고등학교 가운데 ‘자율동아리’가 눈에 띄게 활성화돼 있는 학교다. 자율동아리는 일반고·자사고 불문하고 운영되고 있지만 일반고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규모다.

지난 2009년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내신 성적뿐 아니라 비교과 활동도 평가항목으로 확대되면서 방과 후 활동에 적극 나서는 학교가 상당수다.

때문에 자사고의 경우 대학 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하도록 학생들의 자율동아리를 적극 지원·유도해 왔다. 이 같은 시류에 발맞춰 일반고들도 자율동아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세종고는 자율동아리가 활성화된 일반 고등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

동아리 활동은 교과 과정 내 동아리(CA)와 교과 과정외의 자율동아리로 구분된다. CA는 수업시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참여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지만 자율동아리는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 있는 주제·분야를 선정해 자율적으로 참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K대학교 입학사정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입학사정관제 도입이후 고등학교들이 교과뿐 아니라 진로활동, 방과 후 활동을 많이 확대했다”면서 “CA의 경우 형식적 운영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고교 동아리가 대학처럼 잘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세종고는 이 같은 자율동아리를 학교차원에서 공식 지원한다. 학생들이 동아리 창립을 학교 측에 신청하면 학교는 일정 금액을 지원함과 동시에 이를 간접 지원해주는 지도 교사를 붙여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율동아리는 봉사·학습·토론·취미 동아리 등의 분야에서 9월 현재 50여개를 넘어섰다.

이유경 세종고 창의복지부장은 “자율동아리 지도교사는 동아리활동을 지도관리, 평가해서 생활기록부의 특기사항란에 기록해준다”면서 “연말 간행되는 교내 활동지 ‘글찬누리’에도 자율동아리 활동 사항이 실린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아이들 스스로 결정해서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낀다”면서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도교사들이 적절하게 자극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고등학교의 ‘세종-와프’ 동아리는 외교부 산하 자원봉사기구인 WHAF(World Hope Asia & Africa Foundation, 아시아 아프리카 희망기구)와 손을 잡고 캄보디아 ‘뜨러이뚜뚱’ 초등학교 도서관 지원 사업을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세반모(세종 반찬 배달 모임)’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밑반찬 배달, 문화활동 함께하기 등 정기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지난해 강남구 우수자원봉사 유공자 포창에서 ‘강남구청장상’을 수상했다.
세종고등학교의 자율동아리인 '봉우리'가 지난해 '서울청소년 자원봉사대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세종고등학교 세종고등학교의 자율동아리인 '봉우리'가 지난해 '서울청소년 자원봉사대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세종고등학교

‘봉우리’는 학급단위의 자율동아리로 다양한 자원봉사를 펼쳐 지난해 ‘서울청소년 자원봉사대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기인 세종고등학교 교장은 "자사고에서 자율동아리가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최근에는 일반고들도 자율동아리가 활성화돼있다"면서 "학교 차원에서 자율동아리에 대한 독려 및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학생부종합전형이 부각되면서 자율동아리가 활성화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자사고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주변 일반고에서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면서 "자사고의 프로그램들이 시범 혹은 모범 케이스로서 전국 학교에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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