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브라질]네이마르가 묶이기 시작한 토너먼트에서 브라질은 매 경기 고전했다. ⓒ 연합뉴스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에만 기댔던 브라질은 끝내 대재앙에 직면했다.
브라질은 9일(한국시각) 브라질 벨로오리존치 에스타지우 미네이랑서 열린 독일과 ‘2014 브라질월드컵’ 4강 독일전에서 전반에만 5골을 얻어맞고 무너지며 1-7 대패했다.
1934년 6월 3일 유고슬라비아(현재 세르비아)전에서 4-8로 진 이후 80년 만에 7실점, 1920년 9월 19일 칠레에서 열렸던 코파아메리카 우루과이전 0-6 패배 이후 최다점수차 패배를 당한 브라질은 홈에서 6번째 별을 달겠다는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남미 축구의 최강자인 브라질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생각만큼 전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펠레 후계자'로 평가받았던 네이마르가 있어 내심 홈에서 우승을 기대했지만 브라질에는 네이마르 뿐이었다. 그야말로 원맨팀의 전형이었다.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1950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아픔을 씻겠다는 브라질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오직 홈팬들에게만 기대를 모았을 뿐이었다. 대부분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은 브라질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네이마르에만 기댄 공격 패턴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에서 모두 11골을 넣었다. 이 가운데 네이마르가 4골을, 오스카(23·첼시)와 다비드 루이스(29·파리생제르맹 이적)가 2골씩 기록했다. 그러나 정통 공격수로는 네이마르 뿐이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프레드(31·플루미넨시)는 1골에 그쳤고, 헐크(28·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침묵했다. 조(27·아틀레티코 미네이루)는 존재 자체도 느끼기 어려웠다.
브라질은 지난해 월드컵 전초전이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프레드가 5골을 터뜨리며 실버부트(득점 2위)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프레드가 제몫을 못하면서 네이마르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졌고 이는 브라질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조별리그에서 네이마르는 훨훨 날았다. 크로아티아전과 카메룬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득점왕 가능성도 높였다.
그러나 네이마르가 묶이기 시작한 토너먼트에서 브라질은 매 경기 고전했다. 칠레와 16강전에서는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까지 끌려갔고, 콜롬비아와 8강전 역시 네이마르가 묶이면서 티아고 실바(30·파리생제르맹)의 골과 다비드 루이스의 프리킥 골로 2-1 신승했다. 브라질다운 흥겨운 삼바리듬의 축구도 없었고 화끈한 공격도 없었다.
결국, 네이마르가 콜롬비아 수비수 수니가에게 가격 당해 척추 골절상으로 이탈하면서 큰 구멍이 생겼다. '원맨' 네이마르가 빠진 브라질은 더 이상 무서운 팀이 아니었다.
네이마르 없이도 경기를 잘 치르겠다며 네이마르의 유니폼까지 경기장에 들고 나오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원맨팀의 한계가 바로 드러났다. 헐크와 프레드는 여전히 독일의 중앙수비를 뚫기에 무리였고 네이마르의 빈자리를 메우러 나온 베르나르드(22·샤흐타르 도네츠크)는 기대 이하였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헐크를 전반만 뛰게 하고 하미레스(27·첼시)와 바꿔버렸고 프레드도 후반 24분 만에 윌리앙(26·첼시)와 교체돼 물러났다.
네이마르가 없는 브라질의 공격은 상대를 위협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호나우두와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등 '3R'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공격력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탄탄하게 중앙 수비를 맡으며 공수를 진두지휘하던 시우바의 부재는 수비 붕괴까지 불러왔다. 응집력이 없는 브라질은 전반 11분 토마스 뮐러(25·바이에른 뮌헨) 첫 골에 급격하게 와해되면서 끝내 홈팬들의 야유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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