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첫 승에 대한 기대감은 홍명보 감독의 의리축구로 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스시타카(일본)’와 ‘사커루(호주)’는 침몰했고, ‘중동침대(이란)’는 드러누웠다.
이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첫 승의 희망은 대한민국의 의리사커뿐이다.
18일 오전 7시(한국시각) 러시아에 대항하는 홍명보호의 필승 무기는 '의리'다. 유럽파와 런던올림픽 출신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 홍명보호는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강한 연속성과 팀워크로 결속돼있다. 주축들이 길게는 2009년 청소년대표팀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어왔다.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발탁하겠다”던 당초의 원칙을 뒤집는 것도 불사하면서 최종 엔트리에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을 중용하며 두터운 의리와 신뢰를 보여줬다. 이제는 선수들이 홍명보 감독의 의리에 보답할 때다.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의리사커는 아직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튀니지전(0-1)전과 월드컵 본선을 앞둔 최종 평가전이었던 가나(0-4)전에서 졸전 끝에 참패하며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평가전은 평가전일 뿐이다.
평가전의 부진이 전화위복이 된 사례는 2010년 일본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오카다 감독이 이끌던 일본은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평가전에서 연패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카메룬과 덴마크를 꺾고 2승1패로 16강에 진출하는 반전을 일궈냈다.
일본의 트레이드마크로 꼽히는 짧은 패스와 점유율 축구를 본선 직전에 포기하고 극단적인 수비와 역습 위주의 전술을 내세운 변화가 통했다. 상대적으로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일본을 얕잡아보던 경쟁국들의 방심도 한몫을 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축구는 오히려 일본보다 지금의 한국이 더 잘 소화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이 특별히 다양한 전술을 지닌 감독은 아니다. 수비를 두껍게 하고 역습을 노리는 단순한 전략을 출범 초기부터 꾸준히 유지해온 홍명보호의 스타일이다.
러시아 역시 수비에 비해 공격이 그리 강하지 않은 팀임을 감안했을 때 한 골차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한국의 전력이 저평가 받고 있는 것도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의리사커의 중심은 박주영과 기성용이다. 베스트11이 유력한 두 선수는 팀 내 전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의리사커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들이다.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은 평가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는 한 방씩 터뜨리는 결정력이 있다.
박주영은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리아전 역전골, 런던올림픽 3·4위전 일본전 결승골, 지난 3월 그리스전과의 평가전 선제 결승골 등을 터뜨렸다. 직전까지 계속된 부진으로 도마에 올랐던 박주영은 공교롭게도 '마지막 기회'에서 극적인 한방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스날에서의 방출로 사실상 무적 신세가 된 박주영은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있다. 병역혜택이 걸린 올림픽에서 그러했듯, 박주영은 자신의 이익과 명운이 달려있는 경기에서는 누구보다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기성용은 한국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중원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의 주요 득점루트는 대부분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전담 키커인 기성용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특히, 그동안 SNS 파문과 국기에 대한 경례 논란 등으로 대표팀 내 '오만한 유럽파'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기성용으로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논란이 된 선수들을 끝까지 감싸 안으며 월드컵에 올인한 홍명보 감독의 의리는 과연 보답을 받을 수 있을까. 의리사커의 경쟁력은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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