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터의 원정길’ 전설에 대한 한국야구 자세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4.05.10 07:27  수정 2014.05.11 10:15

‘3000안타’ 지터, 마지막 원정길서 성대한 환영

한국 야구도 감동 자아낼 퍼포먼스 마련해야

지터는 마지막 원정길에서 팬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 mlb.com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40·뉴욕 양키스)가 메이저리그 팬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지터는 지난 8일(한국시각)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에 출전했다. 경기에 앞서 에인절스 구단 측은 등번호 2번과 양키스 로고가 새겨진 카누를 지터에게 선물했다.

지난 1992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지터는 지난 20년간 오직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만을 입었고, 3000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낼 정도로 실력도 출중했다.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199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시작으로 올스타 13회, 골드글러브 5회, 실버슬러거 4회를 수상했고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상대팀 입장에서는 얄미운 존재가 바로 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건네는 의미는 바로 ‘살아 있는 전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다. 올 시즌 에인절스는 일정상 포스트시즌이 아니면 양키스와 만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전설’ 지터가 현역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에인절 스타디움에 발을 디디는 셈이다.

팬들도 지터를 환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지터는 홈런 포함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의 방망이가 돌아갈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원정팀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반응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은퇴를 앞둔 선수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건네고, 팬들 역시 박수를 보내는 관례가 생긴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2012년 은퇴한 애틀랜타의 전설 치퍼 존스를 시작으로 지난해 마리아노 리베라, 그리고 지터가 세 번째다. 이들 모두 명예의 전당급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설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90년대와 2000년대 리그를 주름잡았던 스타들의 대부분이 약물로 얼룩져있다. 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며, 이들 역시 변변한 은퇴식 없이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유니폼을 벗은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메이저리그는 이 기간 ‘역대급 기록’들을 양산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설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약물과는 무관했던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프랭크 토마스, 켄 그리피 주니어의 가치와 순수성이 더욱 존경 받는 모양새다.

한국 프로야구도 전설들에 대한 대우를 좀 더 해줄 필요가 있다. ⓒ 삼성 라이온즈

전설들에 대한 원정팀의 의미 있는 환영은 한국 야구에서도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사항이다.

최근 야구 팬들은 야구사에 큰 획을 그은 양준혁, 이종범, 박재홍, 박경완 등 전설들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이들이 은퇴하는 과정은 너무도 닮아있었다. 선수 입장에서는 현역 생활을 더 유지하고 싶었고, 구단에서는 은퇴를 종용했다. 성대한 은퇴식이 있었지만 은퇴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전설들도 있다. LG 이병규, 두산 김동주, 홍성흔, 삼성 이승엽, 임창용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가치와 존재감은 각 소속팀을 넘어 프로야구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얼마 안 가 이들도 현역 유니폼을 벗게 될 날이 온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라면 마지막 원정길에서 원정팀 선수와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팬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야구팬들은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는가 하면, 위로와 감동을 얻기 위해 야구장을 찾곤 한다. 비록 상대 선수였지만 전설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면 이 또한 남다른 의미가 아닐 수 없다. 팀을 넘어선 존경이야말로 한국야구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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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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