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ad Greece⑨>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를 살피던 중용의 법정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편집자 주>
아레오파고스(Areopagos)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아래 서북쪽에 있다. ‘아레스(Ares) 신의 언덕(Areios Pagos)’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법정이었다. 아테네 시민과 원로들이 모여서 중죄인을 재판했다. 하지만 법정의 엄숙한 이미지에 비해 자연 경관의 위용이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다. 전체가 거친 석회암 덩어리로 된 작은 언덕이다.
언덕 위의 바닥 공간이 동서로 길쭉한 타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길이가 50여 미터가 채 안 될 정도로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바닥이 고르지도 않고 돌부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와 걷기도 힘든 바위 덩어리다.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석회암 계단이 반들반들하고 미끄러워 오르기가 쉽지 않다. 요즘엔 사고 위험 때문에 왼편에 철제 계단을 따로 만들어 이용토록 하고 있다.
이곳은 높이 150여 미터의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이다. 아고라가 훤하게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론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인다. 신을 올려보고, 인간 군상을 내려 볼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있다. 신의 공간인 아크로폴리스와 인간의 공간인 아고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이 마치 신에 의지하여 인간을 심판하던 법정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판관들은 신역(神域)을 올려다보면서 신의 정의를 헤아리고 인간이 부대끼는 시장 아고라를 내려다보면서 민심을 살피며 중용의 판결을 모색하지 않았을까?
이곳이 ‘아레스의 언덕’이 된 유래는 이렇다. 헤라클레스는 12 노역의 하나로 여성 무사족인 아마조네스(Amazones)의 여왕이 차고 있는 허리띠를 가져오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때, 헤라클레스를 질투한 헤라의 방해로 그는 여왕을 죽이고 만다. 이에 아마조네스족이 보복하기 위해 아테네로 쳐들어왔다. 이들은 아레스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아크로폴리스를 포위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퇴각했다. 그 때 그들이 승리의 기원을 위해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이 언덕을 바친 데서 이름이 유래하여 이후 아레오파고스로 불리게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아테네에 침공했을 때, 아크로폴리스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거점으로 아레오파고스를 페르시아 군이 활용한 예가 나온다. 지형적으로 아크로폴리스를 관찰하거나, 포위 공격하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이곳에 군막을 세우고 전투를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아레오파고스는 전시에 침략군들에게 의해 아크로폴리스를 공략하는 전투 기지로 자주 사용되었지만, 평시에는 아테네의 최고 법정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아레오파고스가 법정으로 활용된 이야기는 신화와 비극작품에서 발견된다. 인류 역사상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재판이 여기서 열렸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할리로티오스(Halirrothios)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샘 근처에서 아레스의 딸 알키페(Alcippe)를 겁탈하려고 했다가 아레스에 의해 살해된다. 알키페는 전쟁 신 아레스와 아테네 왕 케크롭스(Kekrops)의 딸 아글라우로스(Aglauros)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이 최초의 살인 사건을 단죄하기 위해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포세이돈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레스를 아테네 법정에 고소했던 것이다. 신들끼리의 송사(訟事)가 벌어진 것이다. 올림포스 12신은 투표로 아레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딸의 순결을 보호하려던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한 듯싶다.
이 최초의 재판은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들이 숭배하던 신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신에 대해 신들이 모여서 재판했다는 것은 신조차 법에 의해 심판받아야 한다는 준칙을 보여준 것이다. 신들도 재판을 받는다면, 하물며 인간들이 법률에 의해 치죄(治罪) 받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는 통치자의 자의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 사회를 통치하고자 했던 그리스인의 사유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법률에 의한 지배(rule of law)을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 민주정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신들도 예외 없이 법률에 의해 심판을 받았듯이 인간 역시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 평등하게 단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신화로써 강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동방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법을 이용한 자의적 지배(rule by law)로 백성을 억압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법 앞에 평등’한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철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인류 최초의 모범적인 재판 사례를 만든 이곳 아레스파고스 언덕의 이름을 본떠서 오늘날 그리스의 대법원의 이름을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로 부르는 것도 이런 상징을 차용한 것 같다. 또 17세기 중엽 영국의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라는 저서를 통해 언론의 자유를 역설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인간에 대한 최초의 재판도 이곳에서 열렸다. 언덕 위의 바닥이 좁았으니 소송의 당사자와 배심원 약간 명만 올라가고 일반시민들은 그 아래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을 듯싶다. 아이스퀼로스의 3부작인 '오레스테이아'에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를 죽인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레스파고스 법정에서 아테나의 주재 아래 심판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복수의 여신에게 쫒긴 오레스테스가 구원을 받기 위해 뛰어든 곳은 아테나 신전이었다. 그는 미케네 왕국의 왕인 사랑하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를 살인으로 복수하지 않으면 고통을 당하리라는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행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호소하며 아테나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테나는 인간 사이의 살인에 대해 자신이 중재할 권한이 없다며 아테네 시민 가운데 재판관을 뽑아 양심에 맞는 심판을 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다. 인간의 죄를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판결하라는 취지다. 인간들의 재판정인 아레오파고스 법정으로 이관한 이유다.
이 비극에서는 코러스장이 원고를 대변하고, 아폴론이 피고의 대변인이 되어 상호 변론하는 재판 과정이 상세히 전개된다. 바위 언덕에는 재판관인 배심원들이 앉을 수 있도록 바위에 좌석을 파놓은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마모되었을 듯싶다. 당시 재판에서 가부 동수의 투표결과가 나오자 무죄가 선언된다. 이는 어머니 살해보다 집안의 가장이자 왕이었던 아가멤논의 살인을 더 크고 중대한 사건으로 여긴 가부장적 문화가 투영된 재판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레오파고스의 재판관 즉 배심원의 수는 몇 명이었을까? 재판 주재자의 권한은 어떠했을까? <오레스테이아>에 묘사된 재판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해석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오레스테스의 재판을 심의한 배심원 수가 몇 명인지 명시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배심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제단 앞으로 나아가 투표 항아리에 투표석을 던져 넣는 장면에서 배심원 수를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코러스장과 아폴론이 각각 유죄와 무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언사를 주고받는다. 코러스장과 아폴론이 교대로 주고받는 말은 배심원 한 명 한 명의 비밀투표에서 찬반의사를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실제 투표자가 자신의 의사발언을 한 후 투표를 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코러스장과 아폴론의 찬반 변론의 횟수를 세어보니 각각 6번, 5번이다. 물론 마지막 코러스장의 변론을 투표행위로 해석하지 않으면 각각 5번씩 동수가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아테나가 마지막으로 자신은 오레스테스 쪽에 투표석을 던지겠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을 보면, 오레스테스의 유죄와 무죄 투표수가 6대 5인 상태에서 아테나의 무죄 투표로 인해 유죄, 무죄가 동수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들만의 심판에서는 유죄로 끝날 수 있었던 재판을 아테나 신의 개입으로 무죄로 판결났다는 뜻이다. 또 재판관은 배심원 11명과 재판장 1명을 합쳐 모두 12명이라는 얘기도 된다. 아테나는 재판장을 은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재판장은 캐스팅보트를 쥐지 않고 배심원 가운데 한 명의 역할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문학 작품에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한 필자의 추정이다. 오레스테스의 재판에서 재판관의 수와 기능을 보다 명확히 설명해 주는 문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아테네 민회의 배심원의 수를 법정에 따라 배심원 수를 501명, 1001명, 1501명으로 정했던 이유는 가부 동수로 인한 부결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쩌면 오레스테스의 재판에서 시사를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레스테스의 재판 과정은 신화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지만, 당대의 아테네 법정 운영 방식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당시 모든 판결은 재판장 단독 판결이 아니라 배심원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다. 원고와 피고의 변론을 모두 듣고 나서 배심원들이 투표석을 항아리에 투입했고, 이를 집계하여 재판장이 판결 결과를 공표했다. 오레스테스 재판에서는 아테나가 재판장 역할을 맡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귀족의 원로들로 구성된 배심원단 중에서 연장자나 세력이 큰 귀족의 원로가 재판장을 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고라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가했던 시민법정이 있었다면 아레오파고스는 소수의 귀족이 배심원이 되어 판결하는 최고재판소 역할을 한 것 같다. 이러한 기능은 공식적인 정치제도를 만들어냈다. 아레오파고스 회(Council of Areopagos)가 그것이다. 귀족들이 모여 국가의 법률을 감독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했던 기구다. 행정의 최고관직인 아르콘(Archon) 역임자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 회 의원직은 종신직으로 아테네 귀족정치를 이끌었다.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민중이 주도하는 민회와 귀족이 중심이 된 귀족회의가 병존했던 것도 그리스 민주정을 안정시키는 발판이 되었을 듯싶다. 솔론의 개혁 때 아레오파고스 회의 기능을 유지시켰던 것도 그런 차원이지 않았을까? 물론 민중을 우선하던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레오파고스의 기능이 약화되긴 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재판정 역할 뿐 아니라, 때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회합과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 바울의 전도 활동이 여기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런 점을 추측하게 한다. 아고라 이외에 또다른 귀족들이나 대중들의 회합소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앞 오른쪽 바위에는 사도 바울의 활동과 관련된 동판이 새겨져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 와서 아테네인들을 선교하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사도행전 17장 22절부터 34절까지이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를 두루 다니다 아테네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계단을 보았다며, 알지도 못하는 신을 숭배할 것이 아니라, 인류를 창조한 하느님을 믿을 것을 호소했다.
사도행전을 찾아보니, 아레오파고스 관원 디오누시오와 몇몇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믿고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신을 숭배하던 아테네인에게 바울의 연설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었겠지만, 큰 울림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어떻든 아레오파고스는 기독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의 사역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작은 성지의 역할도 하고 있는 듯하다.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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