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팍한 과학자들의 기발한 발명, 발견 이야기

입력 2006.08.26 10:45  수정

[화제의 책] 마크 베네케의 <웃는 지식>

여러 분야에 걸쳐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연구 성과를 찾아내어 시상하는 이그노벨상. 주최측에서는 상이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tius Nobel)이라는 인물의 유산으로 창립되었으며 이름도 여기서 따왔노라고 밝히고 있는데,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에 이그노블(ignoble: ‘저열한,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영어)과 노벨상의 노벨(Nobel)을 합쳐서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그노벨상 수상자들과 탈락자들의 기상천외한 발명 · 발견 이야기들을 모은 《웃는 지식》은 한 번 보면 농담 따먹기처럼 가벼운 책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두 번 보면 과학자들의 신선한 발상과 끈질긴 탐구욕, 그리고 저자 마르크 베네케의 촌철살인 ‘이그총평’에 매료되고 만다. ‘이그노벨상’을 아시는지?

‘골든 래즈베리상’을 아는가?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제작된 영화들 중 최악의 영화와 최악의 배우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혹시 ‘다윈상’도 아는가? 어리석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진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포상하는 상이다.

그렇다면 ‘이그노벨상’도 아시는지? 골든 래즈베리상이나 다윈상처럼 비판이나 희화화, 조롱을 목적으로 하는 상은 아니지만, 명망 높은 상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상들과 일맥상통하며, 물론 그 패러디의 대상은 노벨상이다.

1991년 제정되어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AIR》가 주관하고 하버드대학 내 여러 과학단체가 후원하는 이 상은, 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이나 이색적인 업적에 주로 수여한다. 주최측인《황당무계 리서치 연보》의 발행인들은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연구 논문들을 살펴보다가 너무나 ‘엉뚱하고 기묘한’ 연구 결과들에 매료돼 이 상을 제정했노라고 말한다.

여러 분야에 걸쳐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연구 성과를 찾아내어 시상하는데, 독특하면서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치하하고, 과학, 의학, 기술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진시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이그노벨상 주최측에서는 상이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tius Nobel)이라는 인물의 유산으로 창립되었으며 이름도 여기서 따왔노라고 밝히고 있는데,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에 이그노블(ignoble: ‘저열한,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영어)과 노벨상의 노벨(Nobel)을 합쳐서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시상 분야는 물리학, 화학, 의학, 생물학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나 문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상을 주며 매년 바뀔 수 있다. 수상자는 10개 분야에서 10명(정확히는 10건의 연구)이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경우 한 분야에서 복수 시상하기도 한다.

시상식은 매년 9-10월경 하버드대학 샌더스 홀에서 거행되며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상을 수여한다. 수상자는 개인적으로, 또는 방송을 통해 통보된다. 이그노벨상 시상식장에서는 당연히 전통적인 시상식장의 엄숙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다들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옷이나 입고 오고, 수상자에게는 은박지로 만든 메달과 ‘생각하다 떨어진 사람’이 그려진 상장이 주어진다.

수상자의 시상식 참가비는 본인 부담이며, 행여 수상소감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지루해~”라며 연단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이 시상식은 과학계에선 일종의 작은 파티와도 같은 행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향기 나는 신사복을 발명하여 1999년 환경보호 부문 상을 수상한 권혁호 씨(당시 ‘코오롱’ 근무)가 있으며, 우리 나라의 합동결혼식은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연구 논문을 출판한 공로”로 1996년 문학상을 수상한 사회과학 평론지 ≪소셜 텍스트Social Text≫ 편집진은 특히 유명한 수상자들 중 하나다. 이 학술지에 실린 앨런 소칼의 논문이 과학계와 인문학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지적 사기’ 논쟁의 발단이 되었기에, 이 사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수여되었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수상자들로는, 개를 위한 고무 고환을 개발해 의학상을 받은 그렉 밀러, ‘컨트리 음악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역시 의학상을 받은 웨인 스택, 가라오케를 발명해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공존을 이룩한 공로”를 인정받아 평화상을 수상한 이노우에 다이스케, 최근 인도에서 벌어지는 기도의 염가 주문판매를 허락하여(!!) 경제학상을 받은 바티칸 당국 등이 있다.

못말리는 호기심과 기막힌 실험들!

이그노벨상 수상자들과 탈락자들의 기상천외한 발명 · 발견 이야기들을 모은 《웃는 지식》은 한 번 보면 농담 따먹기처럼 가벼운 책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두 번 보면 과학자들의 신선한 발상과 끈질긴 탐구욕, 그리고 저자 마르크 베네케의 촌철살인 ‘이그총평’에 매료되고 만다.

바퀴벌레를 잡아서 그걸 말 삼아 체스를 두고, 커피에 비스킷을 찍어 먹다 불현듯 과자와 음료의 함수관계가 궁금해지며, 잡지를 읽다가 누드사진과 기억력의 상관관계가 알고 싶어지는 과학자들! 그들의 뜬금없는,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호기심을 누가 말리겠는가?

발이 작다고 눈치 주는 장모에게 스트레스 받아 발 길이와 페니스 크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토론토대학의 과학자 제럴드 베인(본문 144쪽 참조), 바보들은 정말 예외 없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증명한 코넬대학의 심리학자들(본문 179쪽 참조), 모기가 그 무엇보다 열광하는 것은 겨드랑이 땀 냄새도, 치즈 냄새도 아닌 오래 신은 양말 냄새라는 걸 몸소 실험한 생물학자 다니엘 클린(본문 114쪽 참조), 여덟 종의 올챙이들을 직접 날것으로 시식하며 그 맛을 비교 연구한 캘리포니아의 동물학자 리처드 워서서그(본문 140쪽 참조), 술을 끊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최고 50퍼센트까지 소득이 떨어진다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실을 입증한 캘거리대학의 경제학자 크리스토퍼 올드(본문 137쪽 참조) 등의 실험은 진지해서 더욱 유쾌하다.

《웃는 지식》을 읽다보면 과학자들도 사람인지라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차의 나라인 영국의 과학자 렌 피셔는 ‘차와 비스킷의 과학적 궁합’을 수식으로 뽑아내는 데 성공했고, 맥주의 나라 독일의 과학자 아른트 라이케는 각 회사별 맥주거품의 물리학적 비밀을 수학식으로 계산해냈다.

존 트링카우스라는 미국의 경제학자는 또 어떤가? 이 괴짜 경제학자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야구모자를 어떻게 쓰는지, 007 서류가방을 어떻게 여는지, 백화점의 가짜 산타클로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 결국 30년간의 ‘쓸모 없는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03년에 이그노벨 문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이 꼭 연구 결과로만 우리를 웃기는 건 아니다. 샤워커튼의 소용돌이를 연구한 슈미트 교수는 시상식장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답례로 샤워캡을 두 개씩 선사해서 우리를 웃게 만들고, 거머리의 식성에 대해 연구해 1996년에 이그노벨 생물학상 수상자가 된 과학자 베르하임이 너무 바빠 시상식에 대신 참석한 워싱턴 주재 노르웨이 대사는, 조용히 시상식장 무대 위로 오르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한 움큼의 거머리를 꺼내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 머리 위로 뿌리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거금을 들여 회색곰 방어복을 만들어놓고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러나 회색곰을 만나면 캔 콜라를 꺼내 흔들다 뚜껑을 따세요. 그러면 겁내며 도망가거든요. 비용도 60센트밖에 안 들고 남은 콜라는 마실 수도 있으니 좋잖아요?”라고 말하는 안전기술 부문 이그노벨상 수상자 허투비즈는 또 얼마나 황당한가?

하지만 《웃는 지식》을 읽는 무엇보다 큰 재미는 저자 마르크 베네케의 입담이 담긴 짤막한 ‘이그총평’에 있다. 직업만족도는 유전자 탓임을 밝힌 경제학자들의 연구가 이그노벨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이 연구가 너무 일리 있기 때문이며 ‘이그노블ignoble’(황당)하지 않아서 탈락했노라고 익살을 떠는 이 개구쟁이 과학자의 촌철살인 멘트는 끝이 없다.

그는 주식투자는 불완전한 정보의 한계 때문에 머리 나쁜 사람이 더 성공확률이 높다는 연구 논문을 두고 생물학이나 수학, 경제학 중 아무 상이나 주고 싶으며, 정히 마땅한 분야가 없으면 적당한 분야를 만들어서라도 상을 수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욕이 특정 집단 내에서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사용된다는 연구논문을 소개하고는, 자신이 집에서 욕을 하는 것도 결혼생활에 평화를 가져오고 부부간의 일체감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떠드는 이 과학자를 어떻게 미워하겠는가.

‘오래 살수록 세금을 절약한다’는 취지의 논문을 두고, 우리는 믿음과 사랑과 호기심뿐만 아니라 절약을 통해서도 죽음과 맞설 수 있다며, 실용주의와 자본주의에 입각해 이 논문에 2001년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한 《황당무계 리서치 연보》의 공동 발행인다운 촌평들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굉장히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웃는 지식》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가진 과학자들에게 바치는 위트 넘치는 응원이자 격려다. 세상사에 호기심이 사라지고 자장면이 맛없어지면 늙는 징조라고들 하던가? 낄낄대며 읽다보면 불현듯 궁금한 게 많아지는 이 책은 노화방지제로도, 과학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