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책 왓포드행 '브라질 구상' 박주영 지워라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02.01 14:55  수정 2014.02.02 17:43

박주영, 왓포드서 기존 붙박이 득점원 파트너 놓고 3파전

섣부른 발탁 초라한 결과 초래 '최후의 카드'

경기력이라는 면만 놓고 볼 때 박주영의 현재 상황은 2006 독일월드컵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연합뉴스

박주영이 일단 아스날을 떠나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의 왓포드는 유럽 겨울이적시장이 막을 내리기 직전인 1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박주영을 2013-14시즌 종료까지 임대로 영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7라운드까지 진행된 챔피언십에서 한 경기 적은 26경기 치른 왓포드는 7승10무9패(승점31)로 총 24개팀 가운데 16위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38골을 터뜨리는 등 팀 득점 부문에서 팀 순위보다 훨씬 높은 8위에 오를 만큼 준수한 득점력을 자랑한다. 3-5-2 포메이션을 주로 구사하는 왓포드는 그동안 주 득점원 트로이 디니와 페르난도 포레스티에리(5골)가 최전방 ‘투톱’으로 호흡을 이뤄왔다.

왓포드는 겨울이적시장을 통해 박주영과 함께 세리에A 우디네세에서 마티아스 라네기에를 영입, 기존 포레스티에리에 박주영, 라네기에 등 3명의 선수를 디니의 ‘투톱’ 파트너로서 포지션 경쟁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많은 출전기회가 필요했고, 2014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위한 ‘실적’이 필요한 박주영으로서는 현 상황에서 왓포드 이적이 나름대로 현실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소식들을 종합할 때, 박주영이 이번 임대 이적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주전 자리를 보장 받은 것도 아니고, 좀 더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 받았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하기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뿐이다.

박주영이 챔피언십 중위권 팀으로 단기 임대를 떠나는 정도의 기회를 바랐던 것이라면 작년 위건 애슬래틱으로의 임대 이적 기회를 날린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박주영의 이번 임대 이적은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향한 마지막 기회를 얻기 위해 시간에 쫓겨 선택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주영의 현실은 대표팀과 월드컵은 고사하고 유럽 무대서 계속 활약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인지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박주영이 왓포드에서 앞선 셀타비고 임대시절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한다면 더 이상 유럽 무대에서 박주영을 불러주는 구단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임대 선수’ 박주영은 왓포드에서 대표팀이나 월드컵에 대한 생각에 앞서 팀의 주축 공격수로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단 왓포드서 입지를 넓히고 생존해야 그 다음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도 일단 현재 갖고 있는 ‘브라질 구상’에서 박주영을 제외하는 것이 맞다. 박주영이 왓포드 입단 이후 곧바로 실전에 투입돼 기대했던 수준의 기량을 발휘할 것인지도 미지수지만, 설령 1~2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해도 박주영을 섣불리 대표팀 평가전에 불러들였다가는 자칫 박주영이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에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될 위험도 있다.

박주영은 지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서 나이지리아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골을 터뜨려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합류, 일본과의 3-4위전에서 결정적인 선제골로 한국 축구의 올림픽 출전사상 첫 메달 획득을 견인했다.

이런 이유로 박주영이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 어느 순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이 영국으로 직접 날아가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 의지를 직접 확인한 사실에서도 그와 같은 기대를 엿볼 수 있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던 박주영의 독일월드컵 출전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벌어졌고, 결국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박주영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올렸디만 결과적으로 박주영은 독일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단 발탁하면 어느 순간 한 몫을 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낳은 초라한 결과였다.

경기력이라는 면만 놓고 볼 때 박주영의 현재 상황은 2006 독일월드컵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유럽 무대에서 뛰는 한국인 축구선수로서 박주영의 미래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에 도전하는 대표팀의 목표 모두를 고려할 때 박주영의 대표팀 발탁 가능성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 구성까지 앞으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박주영이 왓포드에 입단하자마자 좋은 활약을 펼치고 팀 내 입지도 조기에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박주영이 홍명보 감독에게 확신을 심어줄 만큼의 활약을 펼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대표팀에는 박주영이 아니더라도 능력 있는 자원들이 넘쳐난다. 박주영의 발탁을 전제로 둔 듯한 홍 감독의 선수단 운영은 자칫 ‘원 팀, 원 골’이라는 ‘팀 홍명보’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홍 감독은 ‘브라질 구상’에서 박주영을 지워야 한다. 혹시 박주영를 되살려 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박주영이 왓포드에서 그의 커리어 통틀어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거나 박주영이 아니면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전술적 필요성이 생겼을 경우, 최후의 선택사항으로 고려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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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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