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지난해 7월 머스크라인에 인도한 1만8270TEU급 '머스크 매키니 몰러'호(위)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 선박 뒤쪽으로 솟은 굴뚝의 숫자를 보면 엔진이 몇 개인지 알 수 있다.ⓒ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
지난달 20일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대 규모인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을 착공하며 컨테이너선의 대형화가 ‘꿈의 2만TEU급’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지난해 5월 중국 중국 차이나쉬핑컨테이너라인(CSCL)이 수주한 이 선박은 오는 11월이면 CSCL측에 인도돼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1만TEU급 컨테이너선이 발주된 게 2005년, 운항을 시작한 게 2008년이었는데, 불과 6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사실 이 선박은 현대중공업이 수주 당시만 해도 1만8400TEU급이었으나, 이후 CSCL측의 요청에 따라 1만9000TEU급으로 업그레이드되며 ‘2만TEU’급에 한 발 가까워지게 됐다.
10년 전만 해도 2만TEU급 컨선은 ‘실전 투입 불가능한 골칫거리’
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초대형컨테이너선(Very Large Container Ship, VLCS)으로 불리며 원양 정기선 항로의 주력으로 활동하던 10년 전까지만 해도 2만TEU급 컨테이너선은 실용성 자체가 의문시되던 선박이었다.
우선, 엄청난 크기 때문에 기존 인프라로는 수용 불가능하다는 게 당시 해운업계의 시각이었다.
2만TEU급이라는 것은 길이 6m에 폭이 2.4m에 달하는 20피트 컨테이너 2만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를 의미한다. 부산이나 인천 등 항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 트레일러가 싣고 다니는 게 20피트 컨테이너 2개 혹은 40피트 컨테이너 1개다. 그런 트럭 1만대를 실을 수 있는 규모의 선박이 2만TEU급 컨테이너선이다.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크기가 무한정 커져도 되는 건 아니다. 다니는 항로의 수심이나 운하의 폭, 항만의 안벽수심이나 선석 길이, 안벽크레인의 아웃리치(팔 길이)까지도 모두 고려돼야 한다.
VLCS 시대에는 2만TEU급 컨테이너선이 ‘실전 투입 불가능한 골칫거리’로 인식됐다.
당시만 해도 기존 최대 컨테이너선보다 두 배 이상 적재규모가 커지면 선박 폭이나 길이, 만재흘수가 비정상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선박 길이는 400m를 넘어 기존 선석의 표준화된 안벽 길이(350m)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폭도 온데크(갑판 상부) 적재규모 25열에 맞춰 65m는 돼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적재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선박 하부도 물 밑으로 깊게 들어가 만재흘수 역시 20m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선박 사이즈의 증대는 항만인프라와 운하, 주요 항로의 수용능력을 초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우선 선박 길이는 항만 내 선석의 수용능력 한계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다. 선석은 항만 내 안벽을 선박 한 척씩 나눠 접안할 수 있는 크기로 나눠놓은, 자동차로 치면 주차 공간에 해당된다. 기존 선석의 표준 길이는 350m로, 여기서 로프 연결 공간 20~30m를 제하면, 실제 수용 가능한 선박 길이는 320m 이내다. 선박 길이가 400m를 넘을 경우 선석 두 개를 점유해야 하며, 그만큼 항만의 하역 효율성도 떨어진다.
선박 폭은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안벽크레인의 수용능력과 직결된다. VLCS 시대만 해도 온데크 적재 열수가 17열 이내였고, 안벽크레인의 아웃리치(선박 쪽으로 뻗은 구조물 길이)가 18열급 정도면 수용 가능했으나, 적재열수가 25열 이상으로 넘어가면 대형 항만에서는 컨테이너 크레인의 전면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선박 폭과 흘수가 커지면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는 물론 말라카 해협도 통과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아시아에서 미국 동안으로 가려면 남미 대륙을 돌아야 하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찍고 유럽으로 가야 한다. 말라카 해협의 통항 한계를 넘는다면 인도네시아 자바섬 이남까지 돌아가야 한다.
현대중 건조 1만9000TEU급 컨선, 예상보다 폭·만재흘수 등 작아
하지만, 최근 등장한 2만TEU에 육박하는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제원을 보면 예전의 추정된 사이즈만큼 크지는 않다.
현대상선의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은 길이 400m, 폭 58.6m, 만재흘수 16m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지난해 머스크라인에 인도한 1만8270TEU급 '머스크 매키니 몰러'호도 폭만 59m로 조금 넓을 뿐 길이와 만재흘수는 동일하다. 두 선형 모두 10년 전 예상됐던 2만TEU급 컨테이너선만큼 늘어난 것은 길이 뿐이다.
길이의 경우 이미 1만TEU급 컨테이너선의 길이가 350m를 넘으며 기존 선석의 표준 사이즈가 의미가 없어졌다. 선석 하나의 경계선을 넘는 크기라면 조금 넘건 많이 넘건 항만 운영효율에 큰 차이는 없다.
폭은 58.6m로 기존 1만TEU급에 비해 5m정도 넓어졌지만, 온데크 적재열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적재열수는 23열로, 대형 허브항만들이 기존 1만TEU급 컨테이너선에 대비해 마련해놓은 24~25열급 안벽크레인으로도 커버가 가능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수주 당시 제원이었던 1만8400TEU급에서 1만9000TEU급으로 업그레이드됐으나, 온데크 적재 단수만 높일 수 있도록 기술적인 조정을 가했을 뿐 선박 폭이나 길이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해당 선박의 온데크 적재 규모는 23열 26행으로, 한 단에 598개를 쌓을 수 있다. 즉 기존 1만8400TEU보다 한 단만 더 쌓으면 1만9000TEU급이 되는 것이다.
만재흘수 역시 기존 1만TEU급과 큰 차이는 없다. 최근 부산신항 등 주요 허브항만들은 수심을 17m까지 확대하는 준설을 진행하고 있어 만재흘수 16m인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기항에 큰 무리는 없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항만과 항로 인프라 등을 감안해 선주사들은 선박 크기가 커져도 흘수는 16m이하가 되길 원하고, 조선업체도 그에 맞춰 선박을 건조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선박 폭과 만재흘수로는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는 없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1만2000TEU에서 1만3000TEU까지, 파나마 운하는 확장되더라도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밖에 운항할 수 없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그 시절 기준 대형 컨테이너선은 애초에 파나마 운하 통항을 포기하고 만든 선형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500TEU급 컨테이너선이 포스트 파나막스급으로 불렸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한계가 그 정도였다는 얘기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는 선형은 아시아에서 미 동안까지 가지 않고 서안만 왕복하는 것으로도 쓸모는 있다. ‘규모의 경제’와 ‘항로 투입의 유연성’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선사의 판단에 달렸다.
과거의 예상과 달리 말라카 해협 통과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말라카막스급’이라 불렀던 이유는 말라카 해협의 안전수심이 20m 가량이고, 2만TEU급 컨테이너선의 만재흘수가 20m를 넘을 것이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이나 대우조선해양의 1만8270TEU급 컨테이너선은 동일하게 만재흘수가 16m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선박 폭 역시 기존 1만TEU급보다 5m 늘었다고 해협 통과에 지장을 받는 건 아니다. 말라카 해협은 인공적으로 만든 운하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항로이기 때문이다.
엔진 출력 오히려 줄어…‘속도’ 보다는 ‘효율성’ 강조
과거 2만TEU급 컨테이너선 상용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배경 중 하나는 엔진 기술력의 한계였다. 선박 크기가 커지는 만큼 엔진 출력도 높아져야 되는데, 기존 엔진 기술로는 출력을 더 높이면 효율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움직이려면 기존 엔진 출력을 높이는 것보다 2개의 엔진을 장착하는 게 효율적인데, 그러려면 건조 비용이나 유지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엔진은 오히려 8000TEU급 컨테이너선보다 출력이 더 떨어지는 7만7200마력짜리고, 두 개가 아닌 하나의 엔진으로 움직인다.
이는 지난 2005년 같은 회사가 건조한 7455TEU급 컨테이너선의 엔진 출력인 9만3000마력보다도 한참 떨어진다.
비밀은 ‘슬로우 스티밍(감속운항)’ 추세에 있다. 원양 정기선 항로는 선박 한 척이 수입 일에 걸쳐 일주해야 하는 장거리로, 같은 크기의 컨테이너선 여러 척을 투입해 각 항만별로 주 1회씩 기항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선박의 속도가 빠를수록 투입해야 하는 선박 척수를 줄일 수 있어 선박의 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 선박 척수를 줄이면 해운업체 입장에서는 용선료를 줄일 수 있고, 선주사 입장에서는 척당 대선료를 높일 수 있다.
이를테면, 같은 항로라도 일주하는 데 42일이 걸리면 6척의 선박이 필요하지만, 속도를 높여 운항 시간을 35일로 줄이면 5척으로도 가능한 식이다.
하지만, 유가가 상승하고 선박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추세는 바뀌고 있다. 규모가 큰 선박일수록 속도를 높이려면 연료 소모가 심하다. 역으로 선박 규모가 크면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 수 있으므로 굳이 속도를 높이지 않아도 기존 운송 수요를 커버할 수 있다.
어차피 지역별 지선 항로는 피더선으로 커버하면 되니, 기존 8000TEU급보다 두 배 이상 큰 선박으로 주요 간선 항로만 천천히 도는 게 비용 면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해운업체들은 해운시황 침체기 때마다 선복 공급 조절을 위해 선박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며 감속운항의 효용성을 학습한 바 있다. 시장 상황이 화주에게 유가할증료를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쁠 때는 굳이 연료를 많이 소모해 가며 속도를 높일 필요가 없다.
이같은 감속운항 추세 속에서는 선박 사이즈가 커져도 굳이 더 높은 출력의 엔진을 장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엔진 출력도 선주사가 선박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 것인지를 판단해 조선업체에 원하는 제원을 요구하며, 조선업체는 그에 맞춰 건조해준다”며, “현대중공업은 11만5000마력짜리 엔진도 자체 생산해 탑재가 가능하지만, 선주사인 CSCL 측에서 고연비 저출력 엔진을 요구해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에 7만7200마력급 엔진을 장착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과거 예상대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엔진 2개를 장착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머스크라인에 인도한 1만8270TEU급 컨테이너선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선박 역시 속도 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해 4만3000마력짜리 중형 엔진 2개를 장착했다. 엔진이 2개인 선박은 겉모습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선체 뒤쪽으로 굴뚝이 두 개 솟아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비슷한 크기 선박이라면 단축(엔진1개)보다 쌍축(엔진2개)이 엔진 효율이 6~8%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엔진을 1개, 혹은 2개로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선주의 의지에 달렸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초대형 선박에서 엔진이 두 개인 경우 효율이 높은 반면, 선가와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한 개일 경우 효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선가와 유지보수 비용은 절약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선주사가 어느쪽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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