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기록보관소 없으면 뜬구름 잡는 막연한 외침 뿐
국제사회에 객관적 자료 제시할 근거 마련 절대필수요소
수년째 국회 캐비닛에 잠겨있던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북한인권 문제를 다뤄온 민간단체들은 하나같이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고 재단 산하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라는 별도의 기구를 마련해 북한 당국의 인권탄압 사례를 수집, 탄압당사자에 대한 처벌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중국이 예로부터 기록해 온 사료(史料)를 통해 국제사회에 과거 일본의 잔혹했던 침략 실태를 폭로하며 대일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방식과 흡사하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일찍이 2005년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 예방과 처벌 가능성까지 아우르는 ‘북한인권법’에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 조항을 명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햇볕정책 아래 ‘내정간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 추진을 반대해왔다.
민주당은 또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자칫 남북 간 위화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개선을 이끌어내는데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고, 활동해온 관련 단체장들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설립돼야 북한인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물망초 북한인권연구소장 이재원 변호사는 15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북한인권법 조항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이 명시되지 않으면 명분도, 의미도 없는 법일 뿐”이라며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잔혹한 인권침해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우선, 해당 기구가 설립되면 명백한 범죄 사실인 북한의 인권탄압 사례를 국제사회에 객관적인 자료로 제시,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 당국을 압박할 수 있다”며 “가령, 북한 인권 탄압자에 대해 지금처럼 무자비하게 만행을 저지를 경우, 향후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반드시 응징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전해 범죄억제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또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향후 한반도 통일 시 발생되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는 과거 일제 강점기 이후 제대로 역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아 끊임없이 분열되는 현 우리사회 문제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즉,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북한 당국의 이 같은 만행에 대한 청산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부터 그 사례들을 기록·보존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역사분쟁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끊임없이 왜곡된 역사관 주장으로 한국과 중국에 영토분쟁을 야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가 제대로 맞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부족한 ‘기록’에 기인하다.
이에 반해 최근 중국이 국제사회에 과거 일본의 잔혹했던 침략 실태를 폭로하며 대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기록’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는 1900년대 초 중국을 점령한 일본군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낸 1만 7000여 쪽 분량의 편지 내용을 13일 공개했다. 이들은 앞서 10일에도 1950년 공사현장에서 발견해 보관하던 일본군 문서 32건에서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만행을 폭로하며 국제사회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역사의 기록은 국가 존립의 근간이자 대내외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는 만큼 북한 인권문제 역시 정확한 기록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 북한인권 단체들의 주된 주장이다.
아울러 이 변호사는 인적청산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현재 헌법에서도 명백히 북한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명기돼 있다”며 “통일이 되면 이들도 똑같이 한국에서 주권을 행세하게 될 텐데 북한에서 잔혹한 범죄를 지었던 사람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없이 고위직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반드시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인권탄압 사례를 기록해둬야 하나 된 통일한국을 이룰 수 있다”며 “과거 서독이 중앙기록보존소를 통해 동독 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독일의 통합을 이끌어 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61년 서독정부는 동독 내에서 자행되는 정치적 폭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공소시효와 무관한 동독의 비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자료를 수집·보존하여 형사소추를 가능토록 결의했다. 현재 북한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북한인권기록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서독의 대동독 인권정책’에 따르면 “서독의 중앙기록보존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자유를 갈구하는 동독 주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싹틔우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중앙기록보존소는) 서독 정부의 전체 독일인에 대한 보호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나아가 실질적으로 통일 후 체제범죄청산의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북한 당국의 잔혹한 인권범죄를 억제하고 향후 통일한국을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북한인권기록소가 설립돼야 한다는 것이 북한인권단체장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하지만 앞서 13일 이례적으로 북한인권민생법 제정 방침을 공표한 민주당이 아직까지 북한인권기록소를 포함, 구체적인 법안 내용을 두고 당 안팎으로 계속해서 이견이 감지되고 있어 향후 여야 간 조율 끝에 완성될 북한인권법을 기다리는 민간단체들의 기대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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