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주최해 열린 ‘서울지역 철도노동자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수서발 KTX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방만한 운영에 말 한마디 없고, 기득권 지키기하는 것 아닌가.”
한국철도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한지 사흘째인 11일 파업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철도노조와 코레일이 ‘강대강’ 대치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날 오후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연대 파업으로 투쟁의 전선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코레일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 6000여명을 직위해제하는 등 강력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파국열차’를 멈춰 세울 동력은 여론으로 넘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노동운동계 한 인사는 “대표적 강성노조인 철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 되면, 국민들은 ‘배부르니 파업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당장 먹고살기 바쁜 시민들의 입장에선 자신과 상관없는 공기업노조의 권리다툼에 불편을 느끼고, 비판적 시각으로 돌아 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9년 철도노조가 파업돌입 8일 만에 파업을 철회한 것도 정부와 사측의 압박 때문이 아닌 여론이 악화된데 따른 ‘백기투항’이었다. 노조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재산을 볼모로 삼았다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고,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파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전례를 남겼다.
당시 파업기간은 일주일을 넘었지만, 우려되던 수송대란이나 물리적 충돌도 없었다. 불편을 감수한 시민들이 한쪽에서 확실한 ‘완충작용’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파업에서 전례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서울역에서 일부 열차 운행 중지와 관련된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노동운동계 출신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날씨만큼 혹독하게 차가워질 것”이라며 “그러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차 사태’처럼 이른바 ‘귀족노조’, ‘강성노조’로 불리는 노조의 명분 없는 파업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도 했다.
부채 쌓이는데 기득권 싸움만 '개혁은 피하고 철밥통 지킨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선 공기업 종사자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상대적으로 ‘배부른 기득권자’들이다. 온라인에선 “현대차노조가 잠잠하니 이번에 이쪽에서 난리다”, “평균연봉 5천이 넘는데 뭘 더 바라느냐”는 등 비판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
코레일은 17조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데다 부채비율이 430%에 달한다. ‘민영화 반대’목소리에 가려져 있지만, 노조는 이번에 ‘월급을 8% 올려 달라’는 카드도 함께 내밀었다. 임직원 평균연봉이 5800만원대에 이르고, 방만한 경영으로 공기업 개혁대상에 올라 있지만, 정부의 공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2.8%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의 칼날과 경쟁구도를 피하면서도 “철밥통은 챙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은 “철도노조를 비롯한 공공노조는 한국 근로자 중 비교적 높은 보수와 고용안정을 누려온 기득권층에 속하는데, 이들이 지금 공공성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학장은 이어 “이번 파업이 우리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일자리 창출도 그만큼 지연되고, 민간부문 근로자들과 노조의 보호막조차 없는 대다수 근로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며 “국민의 재산을 담보로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치권이 노사문제에 끼어드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 문제는 당사자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인데, 정치권이 끼어들면 노사교섭의 불균형 등 부작용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철도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오히려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조짐이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파업열차에 올라타려는 움직임에 대한 경종이다. 노사문제는 당사자 간에 풀어야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고, 향후 수습 및 협의과정에서의 진통도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노조원 감소-경쟁체제가 불편한 노조…정부 "법에 따라 엄중 대응"
이번 사태의 표면 쟁점은 노조가 주장하는 ‘코레일 민영화 여부’다. 코레일은 신설되는 KTX 법인 지분의 민간 참여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에 민영화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노조는 자회사 분리 운영 자체가 민영화의 사전 포석이라는 입장이다.
속내는 조금 다르다. 코레일 계열사로 KTX운영회사를 세우게 되면 코레일 소속 노조원들이 자회사로 빠져 나가게 된다. 즉, 노조 입장에선 10% 안팎의 노조원 이탈이 불가피하다. 계열사의 등장으로 기존 철도운영 독점체제도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사이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KTX와 수도권 전철, 통근열차 등은 정상 운행 되고 있지만,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등의 일반 열차 운행률은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열차는 평소 보다 64% 수준으로 줄어 열차 이용객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화물 열차 역시 35% 수준으로 운행률이 낮아져 시멘트 등 일부화물 수송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시멘트와 유연탄 등 물류 수송 차질에 따라 공장 가동 중단에 이어져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와 코레일은 이번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처키로 했다. 철도노조 집행부 100여명을 고소·고발조치하고, 출근지시 불응 직원은 직위해제하기로 했다. “강성 노조의 파업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에 따라 엄중 대응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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