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을 비롯한 선수단 전체가 삭발투혼을 감행한 원주 동부가 최강 서울 SK를 꺾고 12연패 사슬을 풀었다. ⓒ 원주 동부
연패팀이 연승팀을, 꼴찌팀이 1위팀을 꺾을 수도 있는 것이 승부의 세계고, 그것이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24일 잠실학생체육관서 열린 '2013-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 2라운드에서 맞붙은 서울 SK와 원주 동부의 상황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SK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최다승에 이어 올해도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강팀이다. 특히, 안방에서는 27연승의 KBL 신기록을 이어가던 팀이다. 반면, 동부는 올 시즌 명문구단의 자존심이 무색하게 꼴찌로 추락해 체면을 구기고 있었다. 최근 12연패 수렁에 빠지며 팀 창단 이후 최다연패 기록을 매 경기 써가고 있던 상황이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SK 낙승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연패 탈출을 위해 단체 삭발을 감행하며 투지를 불태운 동부는 초반부터 거세게 SK를 몰아붙였다. 동부가 포워드 위주의 공격농구를 펼치는 SK에 승부수로 띄운 3-2 지역방어가 모처럼 통했다. 애런 헤인즈(28점)을 제외한 SK 선수들은 동부의 거센 저항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동부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된 것이 수비와 승부처에서의 집중력 실종이었다. 동부는 연패 기간 지리멸렬한 수비 조직력으로 초반부터 대량실점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또 4쿼터만 되면 급격한 체력저하와 잘 따라붙다가도 어이없는 실책으로 자멸하며 의욕을 상실한 듯한 플레이가 이어졌다.
이날만큼은 그런 장면이 없었다. 동부 선수들은 리바운드 가담과 루즈볼 쟁취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최근의 그 어느 경기보다 동부 선수들이 코트에 넘어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위기에서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코트 위 5명만이 아니라 벤치에 있던 선수들도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독려하며 하나가 됐다.
이날 동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완전삭발에 가깝게 민머리를 드러낸 이승준은 그동안 공격에 비해 수비가 약하다는 비판에 이를 악문 듯 골밑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이며 리바운드를 사수했다. 이승준은 이날 11점-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4쿼터 승부처에서는 박병우의 활약이 빛났다. 접전이 이어지던 4쿼터 초반 박병우가 결정적인 가로채기에 이은 속공 득점과 3점슛까지 터뜨리며 점수 차를 두 자릿수로 벌리는데 기여했다. 이후에도 SK의 추격이 거세질 때마다 박병우는 정확한 중장거리포를 꽂아 넣으며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이날 박병우가 기록한 14점 중 10점이 4쿼터에 터졌다.
80-75로 동부의 승리가 확정되면서 지긋지긋한 12연패 사슬을 끊는 순간, 동부 선수들은 벤치에서 쏟아져 나와 모두 환호했다. 계속된 연패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충희 감독도 긴 악몽에서 빠져나온 듯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SK는 초반부터 수비가 무너지며 평소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동부 선수들이 무려 5명이나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릴 반면, SK는 헤인즈와 김선형(17점)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 최근 할리우드 액션과 오심 논란 등으로 홈 연승 기록에도 다소 어수선했던 것이 집중력 유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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