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상영한다고 가봤더니...도둑개봉 나빠요!

김해원 기자

입력 2013.09.19 10:25  수정 2013.09.23 10:47

배급사 일정 때문에 걸었을뿐 실제로는 상영 안해

소규모 영화 공정 경쟁할 수 있는 시장 만들어야

"새벽 3시에 영화를 상영한다고 했지만 실제 극장에 가보니 이름만 걸어놓은 '도둑 개봉'이었어요."

소형 배급사의 영화들이 영화관에 상영시간표만 올려놓고 실제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도둑 개봉'을 하고 있어 관객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한국영화는 이른바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과거 해외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경쟁이 안 돼 스크린쿼터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국적을 불문하고 소형 영화에 대한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소형 배급사 영화의 경우 상영관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상영관을 찾는 경우에도 '프라임 시간대'가 아닌 늦은 시간대에 배치된다. 불법 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투자사와 배급사 상영관이 '한 몸'이 된 거대 영화 마케팅의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 씨(25·여)는 지난 2009년에 해외에서 개봉한 영화가 4년만에 한국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상영관은 서울과 강원도에 각각 1곳 씩 있었다. 상영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인 새벽 3시였지만, '꼭 보고싶은 영화였기에' 이씨는 예매를 서둘렀다.

하지만 새벽 3시에 상영하는 영화는 매번 매진이었고, 이 씨는 해당 극장에 상영여부를 확인하고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배급사 일정때문에 걸어둔 것이고 실제로는 상영하지 않는다"는 것.

이를 두고 한 인터넷 영화동호회에선 새벽 시간대의 상영관에 영화의 이름만 올려놓고 매진으로 눈속임을 해 관객들의 선택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불만의 글이 쇄도했다.

상영관인 롯데시네마의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배급사 측에서 부탁한 내용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고, 해당 배급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개봉관을 열어놓았다"며 "관객은 없는데 하루 하루 디지털상영료는 지불해야 해 사정이 어려워 영화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인지도가 낮은 영화들이 거대 자본의 홍보나 입소문이 없이는 스스로 성공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남모르게 진행되는 '도둑 개봉'을 소형 배급사의 '애환'으로 보기도 있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VOD 판권이나 홍보용 목적으로 '극장 상영'을 강행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소형 배급사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작이라는 이유만으로 VOD가 더 비싸게 넘겨질 수 있다는 것.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극장 개봉작이 홍보효과가 있어 판권이 비싸게 넘겨질 수 있기는 하지만 개별 영업사항이기 때문에 연구자료로 쓰려고 해도 구체적인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배급사의 불공정 행위라면 신고센터에 피해를 접수하면 되지만 배급사와 상영관 양쪽 상의 계약이라면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사항"이라며 "상영이 중지된 영화는 상영시간을 없애 관객들의 혼란을 줄여주는 등의 수정조치만 통보만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소규모 영화, 공정 경쟁할 수 있는 시장 만들어야"

이처럼 대형 한국 영화가 대부분의 상영관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운데 소형 배급사의 영화들은 상영관을 찾지 못해 새벽시간 '도둑 개봉'을 하거나, 이조차 여의치 못해 '사기 개봉'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흥행 성공을 이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투자사와 배급사 극장이 하나인 경우가 많았고 한국영화 성공에 힘입어 복합상영관을 가진 대기업의 영화관 매출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 4551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저예산 영화는 이른 아침이나 밤 늦은 시간대에 배치되거나 그마저도 상영관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영화관마다 스크린은 10개가 넘지만 선택할 영화는 3, 4편에 불과한 것.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저예산 영화나 소규모 배급사를 보호하기 위해 적어도 일주일은 상영해야 한다는 등의 표준 상영 계약서가 있다"면서 "다만 권고안이라서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계에서도 동반성장협의회를 여는 등 저예산 영화 보호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취지를 공감하고 적용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마케팅과 투자가 제한적인 저예산 영화들이 상영관을 잡지 못하고 관객들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가운데 저예산 영화가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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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원 기자 (lemir0505@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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