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라는 표현까지 사용될 만큼 기나긴 터널을 지나 MBC '일밤'이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아빠! 어디가?' 코너의 해맑은 아이들과 함께 '진짜 사나이' 코너의 일곱 사나이들이 바로 그 주역이다. 4월 중순까지 한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두 자리 수 시청률이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던 ‘일밤’이 이젠 시청률 20%에 육박하고 있다. 시청률 급등을 이끌어낸 신호탄이 ‘아빠! 어디가?’라면 이제 그 견인차는 ‘진짜 사나이’다.
MBC 예능의 핵심은 역시 리얼버라이어티다. 엄청난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 등을 선보인 바 있는 MBC 예능국은 아이들을 등장시킨 리얼 버라이어티 ‘아빠! 어디가?’와 김수로 서경석 류수영 장혁 샘 해밍턴 손진영 박형식 등 일곱 남자 연예인을 군대에 투입하는 군 리얼 버라이어티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진짜 사나이’는 특히 주부층과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진짜사나이’를 통해 과거 군 복무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장차 군 입대를 앞두고 예비 교육을 받는 남성 시청자들도 있지만 주요 시청자 층은 오히려 여성이다.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는 남자들만의 세상, 주변 남자들의 허풍 섞인 이야기로만 접할 수 있던 군대의 모습을 리얼하게 볼 수 있다는 부분이 큰 강점이다. 게다가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둔 주부, 곧 내지는 언젠가 아들을 군 입대시켜야 하는 주부들 입장에서도 ‘진짜 사나이’는 눈길을 가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진짜사나이’를 좋게 보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진짜 사나이’는 역대 최대 제작비가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일곱 명의 연예인이 직접 군대에 들어가 병영 생활을 하며 훈련도 소화하는 컨셉트인 ‘진짜 사나이’는 부대마다의 특성에 맞는 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포격 훈련을 소화하기도 하고 각종 장갑차 등의 군 장비를 직접 운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매회 훈련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방영분은 엄청난 규모의 훈련이 펼쳐졌다. 남한강 도하작전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급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3시간 안에 하폭 280m의 남한강에 문교와 부교를 구축해 아군 교도부를 확보한 뒤 대규모 전투 부대를 도하시키는 훈련이었다.
공병 300명, 수송차량 100대, 교절 50여 개, 교량 가설단정 20여 대가 동원됐으며 해당 부대에서 훈련이 펼쳐진 남한강까지의 거리도 20여km나 됐다. 동원인력과 장비 등을 놓고 볼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프로그램이다. 동원된 장갑차와 탱크, 헬기 등의 유류대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군부대의 훈련인 만큼 방송국에서 제작비를 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방송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블록버스터급 훈련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직접 제작했다면 역대 예능 프로그램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군대에서 사용된 비용이 곧 국방비, 다시 말해 국민의 혈세라는 점이다. 국방을 위한 세금은 국방비가 TV 예능 프로그램 제작비로 사용된다면 이 부분 역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진짜 사나지’ 제작진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그런 대규모 훈련을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부대 일정에 잡혀 있는 훈련에 맞춰 ‘진짜 사나이’ 촬영이 이뤄지는 것으로 육군과 협의해 다음 촬영 부대를 선발할 때 미리 해당 부대의 훈련 스케줄을 파악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번 남한강 도하 작전 역시 ‘진짜 사나이’ 촬영을 위해 일부러 훈련을 진행한 것이 아닌 원래 예정돼 있는 훈련 일정에 맞춰 촬영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방비 낭비 논란에선 ‘진짜 사나이’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그럼에도 군 전역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해당 부대 소속 장병들이 ‘진짜 사나이’로 인해 고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다. 군부대의 특성상 누군가가 지켜보는 훈련일수록 장병들의 고생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늘 해오던 비슷한 훈련일 지라도 해당 훈련에 사단장 등이 방문한다고 하면 장병들은 더욱 고되게 훈련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형 훈련에 방송 촬영팀이 합류하면 소속 부대 장병들에겐 엄청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해당 훈련이 방송을 탈 경우 사단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기본이고 전 국민이 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조금의 실수도 있으면 안 되며 지금껏 훈련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훈련을 선보여야 하는 해당 부대 장병들이 얼마나 고생할지를 아는 군 전역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선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진짜 사나이’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군대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바꾸는 등 군 입장에선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군 기피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은 지속적으로 군대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홍보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렇지만 군대에 대한 이미지가 결코 쉽지 만은 않을 일이었다.
게다가 군 장병의 사기진작과 군 홍보를 위해 도입된 국군홍보지원단의 연예사병 제도까지 최근에 폐지됐다. 이제 연예사병 제도까지 폐지되면서 연예사병을 활용한 군 홍보 영상이나 뮤지컬 등을 제작하는 방식의 군 홍보가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이런 고민을 ‘진짜 사나이’가 한 방에 해결해주고 있다. ‘진짜 사나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군 홍보가 되고 군대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잘 하면 ‘진짜 사나이’로 인해 군 기피자가 급감할 수도 있다는 희망찬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홍보 효과로 인해 현재 육군을 위주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진짜 사나이’가 추후 해군과 공군, 해병대 등으로 촬영 범위가 계속 확대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군이 ‘진짜 사나이’를 통한 군 홍보에 심혈을 기울일수록 프로그램은 계속 산으로 갈 위험성이 크다. 벌써부터 ‘진짜 사나이’의 제작 규모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번 남한강 도하 작전보다 더 규모가 큰 훈련이 연이어 방송을 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제작진의 설명처럼 이미 예정된 훈련을 소화하는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촬영이 진행되는 현재의 방식이 군 홍보를 위해 보다 규모 있는 방송용 대규모 훈련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른 소속 부대 장병들의 피로도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 자신들의 병영으로 직접 들어와 함께 생활하고 훈련하는 것이 소속 부대 장병들에게도 환영받는 상황에선 ‘진짜 사나이’가 군 장병의 사기 진작 등 순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소속 부대 장병들이 ‘진짜 사나이’ 촬영팀의 방문을 꺼려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군 장병의 사기 진작은커녕 군인들부터 거부하는 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될 위험성이 크다.
어쩌면 이런 문제점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 있다. 그런 만큼 ‘진짜 사나이’가 진정 군 장병과 시청자들에게 모두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제작진과 군의 유기적인 호흡을 통해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며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