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조의 4연승을 질주하고 있는 LG가 2위까지 올라섰다. LG는 13일 인천 문학구장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SK전에서 10-1 대승했다. 선발 류제국 호투와 20안타를 몰아치는 투타의 완벽한 조화 속에 SK를 대파했다.
올 시즌 LG는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결정적 배경은 완벽한 투타의 축이 형성됐다는 것.
마운드에서는 에이스 류제국이 안정된 투구를, 야수 중에는 불혹의 베테랑 이병규(40)가 타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맏형이 맹타를 휘두르고 앞에서 솔선수범하니 박용택-이진영 등 중고참들까지 상승하는 선순환 구조가 LG 상승세의 이유다.
한국 나이로 마흔인 이병규의 회춘이 특히 눈에 띈다. 이병규의 14일 현재 타율은 꿈의 4할에 9리 부족한 0.391이다. 아직은 규정타석 미달로 장외 타격왕에 그치고 있지만 그의 배팅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현재 173타석을 소화한 이병규는 규정타석(229타석)에 56타석 부족하다. 올 시즌 규정타석은 397타석이므로 잔여일정에서 거의 전 경기출장 해야 채울 수 있다. 타석만 채우면 이병규는 꿈의 4할에 도전할 위치가 된다.
LG 전신 MBC 청룡 시절 선수 겸 감독으로 역대 최고령 타격왕을 차지했던 백인천 전 감독이 1982년 기록했던 꿈의 타율이 0.412다. 올 시즌 타격 1위는 0.336의 최정(SK)이다. '장외 1위' 이병규와는 큰 차이다.
연이은 신기록 제조기
올 시즌 이병규는 통산 대기록을 연속으로 갈아치우고 있다. 주변의 평범한 노장에서 탈피, 기록의 중심으로 순간 이동했다.
우선, 지난 5일 넥센전에서 기록한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신기록이다. 이병규는 종전 양준혁 기록(34세)을 훌쩍 넘어섰다. 10일 잠실 NC전에서는 10연타석 안타 신기록을 수립, 김민재 코치(두산)가 2004년에 수립했던 기록(9연타석 안타)마저 깼다.
남은 대기록은 바로 백인천 감독 이후 아무도 밟지 못한 '꿈의 4할' 도전이다. 여기에 최고령 기록까지 동시에 도전하는 이병규의 날선 배트에 쏠린 관심은 지대하다. 프로야구 창단 초기 아마와 프로의 경계가 모호하던 시절 백 전 감독이 수립했던 4할과 현재 프로 시스템과 외국인선수 제도가 정착된 상황의 4할은 같은 4할이라도 의미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병규의 기록이 돋보이는 이유는 자신의 개인 성적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팀을 이끄는 정신적 리더로 일궈내고 있는 값진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병규는 지난 2002년 이후 가을야구를 포기했던 팀을 가을로 이끄는 주장이다.
메이저리그의 최고령 타격왕 기록은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전 보스턴)와 배리 본즈(전 샌프란시스코)가 보유한 40세다. 일본은 펠릭스 미얀(전 요코하마) 등 3명이 보유한 36세가 최고령이다.
'배드볼 히터' 이병규의 화려한 변신
1997년 입단한 이병규는 입단 초기 장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타자였다. 정교한 스윙과 빠른 발, 그리고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 등 야수가 지녀야 할 모든 장점은 갖춘 완전체에 가까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바로 '지나친 적극성'이었다.
타석에서 나쁜 공에 쉽게 배트가 따라 나가는 소위 ‘배드볼(Bad Ball) 히터’가 유일한 아킬레스였다. 따라서 이병규의 요리법은 간단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원바운드성 유인구와 어깨 높이로 오는 빠른 직구. 이것을 적절하게 배합하면 20대 시절 혈기왕성한 이병규를 헛스윙 삼진으로 솎아낼 수 있었다. 긴 팔과 긴 다리로 나쁜 볼까지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역이용한 것.
하지만 올해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 투수가 던지는 볼까지 따라가서 안타를 생산하는 배트 컨트롤의 업그레이드까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규의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0.453에 이른다. 자신의 시즌 타율보다 훨씬 높다. 이는 찬스에서의 집중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나이 마흔이면 스윙 스피드와 순발력, 그리고 체력 저하로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오히려 이병규는 역으로 강화되고 있다. 은퇴를 논할 불혹의 마흔에 이병규는 회춘하고 있다.
적토마 '마흔 잔치' 시작되나
적토마라는 그의 별명도 어찌 보면 젊은 시절에나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런 애칭이다. 실제로 그의 도루 능력은 적토마라는 닉네임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해진 지 오래다.
적토마의 동적인 활동성이 줄어든 대신 타석에서의 정적인 집중력은 향상됐다. 이는 배트의 컨트롤 능력으로 이어졌다. 이병규는 올 시즌 풀 스윙보단 손목을 활용한 컨택 능력을 강화, 출루율은 물론 타율까지 급상승시키고 있다. 동시에 공을 골라내는 눈까지 좋아졌다. 상대 투수들은 이병규를 상대로 던질 공이 현재로선 없어진 상황.
긴 팔과 긴 다리로 몸쪽은 물론, 외곽 꽉찬 공까지 때리는 능력은 이병규만의 장점이다. 여기에 지나친 적극성을 적극적인 타격으로 절제하는 미덕까지 마흔 나이에 터득한 이병규로선 비로소 타격 달인의 경지에 오르고 있다. 게다가 개인적인 플레이보단 팀을 위한 희생을 실천하면서 이병규의 야구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누군가는 그랬다. 서른 잔치로 끝났다고. 하지만 이병규는 마흔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타격 달인을 향한, 팀의 가을 야구를 책임지겠다는 맏형의 절박함이 바로 ‘이병규 야구’를 마흔 즈음에서야 발효시킨 효소일지도 모른다. 빈틈 있던 그의 야구가 완숙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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