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진영 40년대 일본군 복무기록 문제삼아 '친일파'
전문가 "항일만 하면 다 독립군인가 당시 상황 이해를"
“백선엽은 대한민국 창군의 주역, 한국전쟁의 ‘전쟁영웅’이다.”
“백선엽은 일제시대 독립군 토벌대 출신 친일파 중 친일파다.”
한국전쟁 63돌을 맞은 올해는 유난히 시끄럽다. 6.25를 둘러싼 역사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좌우 진영싸움으로 격상되고 있다. 63년 전 남북으로 갈려 서로를 겨눈 총부리는 현재 좌우로 갈려 포화를 퍼붓고 있다. 6.25는 반세기를 넘어선 지금까지 ‘피 흘리는 6월’이다.
6.25를 앞둔 남남갈등의 대표적인 사안은 백선엽 장군을 둘러싼 역사논쟁이다. 백 장군은 ‘6.25의 영웅’으로 불리지만, 일부진영에선 그를 ‘반민족행위자’로 낙인찍기를 하고 있다.
백 장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현대사 전반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념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올해도 백 장군을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원수로 추대하자’는 주장과 ‘명예원수는 절대 안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미 정부는 지난 2010년에도 6.25 60주년을 맞아 백 장군을 창군 사상 최초로 5성장군인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다가 진보진영의 반발에 부딪혔다.
‘한국사회 = 갈등이 구조화된 사회’라는 등식이 고착된 상황에서 “영웅이 탄생하기 힘든 세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2세 육군참모총장 오른 전쟁영웅…다부동전투 등 기념비적 전투 승리 이끌어
백 장군의 업적에 대해선 그를 부정하는 세력에서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국군 첫 대장에 오른 백 장군은 6.25때 사단장과 군단장을 거쳐 32세에 최연소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북진 때는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했다. 다부동전투를 비롯해 당시 여러 기념비적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만주국 장교로 복무하던 중 광복을 맞아 26세 때 미군정이 조직한 국방경비대에 들어갔고, 29세에 1사단장으로 재임하며 군을 지휘했다.
육군 1사단은 6.25 전쟁 기간 중 총 112회의 전투에 참가해 북한-중공군 8만2000여명을 사살하고 6900여명을 생포했다. 이에 육군 최초 창설부대 육군 1사단은 지난 2010년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단 사령부 전진광장에 백 장군 기념석을 세웠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육군 1사단장에 취임한 뒤 다음해 4월 1군단장을 거쳐 전훈을 인정받아 1952년 32세의 나이에 최연소 육군 참모총장 자리까지 오른 한국전쟁 영웅이다.
미국에서도 '전쟁영웅'…주한미군사령관 이취임식 "존경하는 백선엽"으로 시작
백 장군은 정전 이후 한국군의 재건과 기강 확립, 국방력 강화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초대 1야전군사령관으로서 아시아 최초로 야전군을 창설하기도 했다.
오히려 백 장군은 미국에서 ‘논란의 여지없는’ 전쟁영웅으로 통한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이-취임식 때마다 연설에서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으로 시작하는 게 전통이다.
6.25전쟁 당시 참상을 설명하는 그의 육성은 6월 미국 조지아 주 포트베닝의 미 국립보병박물관 한국전 전시관에 영구 보존됐다.
또한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에선 백 장군이 승리로 이끈 다부동전투의 회고록을 수업 교재로 활용할 정도다. 당시 백 장군은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며 부하들을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진보진영 '민족반역자' 비난 "예수님, 부처님도 성인 대우 받기 어려워"
하지만, 백 장군은 1940년대 일본군(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는 이력 때문에 친일파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진보진영은 물론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도 그를 “민족 반역자”라고 비하했다.
이에 허남성 국방대학교 명예교수는 “백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을 두 차례나 지내면서 오늘날의 육군이 되도록 증강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등 여러 가지 시스템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한 분”이라며 “백 장군이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백 장군의 ‘독립군 토벌부대 근무’경력 논란에 대해선 “당시 독립군의 정체를 잘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6.25전쟁 때에 북한군으로 들어가서 북한군의 주력부대에 일부가 돼 남침을 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를 우리가 똑바로 보지 않고서 마치 항일만 하면 다 독립군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은 “백 장군이 흠이 있더라도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큰 공적을 세운 일등공신”이라며 “(백 장군에 대한 반대여론을 보니)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이 이 시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성인 대우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잊혀진 전쟁' 6.25 제대로 알고, "용사들의 희행 헛되지 않게 해야"
정작 ‘6.25에 대한 기억’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발발연도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6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과 중·고교생 청소년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를 벌인 조사에서 ‘6.25전쟁 발발 연도를 주관식으로 쓰라’고 하자 성인의 35.8%, 청소년의 52.7%는 잘못된 답변을 적었다.
성인과 청소년들 가운데 상당수가 6.25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잊혀진 전쟁’이 된 것이다. 그만큼 6.25역사가 왜곡-변질될 가능성도 커졌다. 여기에 사회 곳곳에서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해 지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마저 거꾸로 돌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일이라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6.25역사 바로세우기’를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6.25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치른 희생이 어떤 의미였는지 후세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앞으로 여러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후세들에게 6.25전쟁을 정확하게 알리는 올바른 역사 교육도 반드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당시 전쟁에 참여한 용사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뤄졌다는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대사의 큰 상처가 63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물지 않았고, 오히려 후세에서 후벼 파 덧나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민낯’이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백선엽’을 검색하면 ‘5성 장군’, ‘다부동전투’, ‘백선엽 업적’과 함께 ‘친일파’가 관련 검색어로 따라붙는다. 무엇을 클릭해야 6.25를 둘러싼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는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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