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과거 정부 관행 답습않고 대북관계 원칙 고수 입장 재확인

박 대통령 12일 공식일정 없어, 상황 예의주시하는 듯

남북 양측이 당국회담 수석대표 '격(格)'을 놓고 절충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12일 열릴 예정이던 회담이 무산됐다. 사진은 11일 오후 회담 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마이크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수석대표의 '격'을 둘러싼 북측의 억지 주장으로 남북당국회담 협상이 끝내 무산된 것과 관련, 청와대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 박근혜 대통령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이번 일과 관련된 발언은 아니지만 굉장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형식으로 남북회담의 첫 단추를 끼우면 결과까지 틀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과거 정부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고, 대북관계에 있어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날 협상이 무산된 직후에도 기자들과 만나 "서로가 존중하면서 진지함과 진정성을 갖고 우선 회담에 임하는 당국자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를 내세우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느냐"며 북한의 행태를 지적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그런 식으로 그렇게 외국에 가서는 국제 스탠다드에 맞게 하고, 이렇게 남북 간 당국자 회담에서는 처음부터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상대에게 존중 대신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0년 전에 잘못된 게 있으면 계속 그렇게 가야 하느냐.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북한과 우리는 대등한 입장에서 만난다는 '원칙이 있는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내일 태양이 떠보면 알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하는 게 협상이 아니겠느냐"면서 향후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진 않았다.

앞서 우리측 협상단은 북측에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협상 파트너로 장관급인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김 부장이 류 장관보다 급이 높단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우리 측이 수석대표로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내세우자 북측이 일방적으로 회담 무산을 통보한 것.

실제 북한의 대표단 명단에서 수석대표는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으로, 조평동의 국장은 우리나라의 차관 혹은 국(실)장과 비슷한 지위다. 애초에 북측이 류 장관에게 걸맞지 않는 협상 파트너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북측은 우리측 수석대표의 급이 낮다며 협상테이블을 걷어 차버렸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있으며, 남북 당국화담과 관련해서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박 대통령은) 별다른 일정 없이 통상업무를 수행한다"며 "(당국회담의 경우) 완전히 문이 닫힌 건 아니지만 우선은 중단된 상태고, 협상이 무산됐다. 그렇다고 대화 자체를 닫은 건 아니니 향후 협상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