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거지가 왜 뜨냐구? 궁금해? 궁금하면...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입력 2012.11.29 11:46  수정 2013.05.22 14:47

<김헌식 칼럼>500원은 존재적 가치 '자존심'을 상징

KBS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거지의 품격' 동영상 화면 캡처.
근래에 인터넷 상에는 꽃거지라는 이름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길거리의 행려객 가운데 꽃미남을 골라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라 비판할 수도 있다. 거지의 얼굴마저 꽃미남이어야 주목을 받으니 말이다. 외모에 대한 선망이 극에 달한 때문일까.

영화 '나는 살인범이다'에서는 연쇄살인범이 꽃미남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 외모는 성형의 힘이었다. 만들어진 이미지였던 것이다. 길거리의 거지가 성형 미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꽃거지에는 여성은 없고 모두 남성이다. 만약 여성거지라면 꽃거지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지도 성형여부에 관계없이 이제 꽃미남이어야 하겠고 그렇게 된다면 용서가 될 법하다. 꽃거지 신드롬은 방송 개그프로그램에 반영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개콘의 '꽃거지'는 좀더 다른 의미들을 담고 있어 생각해 볼 점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행인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성향이나 옷차림까지 거지와 대비된다. 거지와는 다른 세계에 산다. 거지의 용기가 없다면 같은 공간에 있을 수도 없고 말을 나눌 수도 없다. 하지만 거지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자신이 바라는 걸 요구 한다. 어느새 그 거지는 곧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핍이 있어도 당당하고 싶은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심정으로 말이다. 꽃거지는 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지적 재산권에 돈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는 행인에게 500원을 요구한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는 소중하다. 비록 거지라고 해도 말이다. 스스로 꽃거지라는 개념으로 그를 스스로 규정하는 이유다. 외모가 정체성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거지는 반대로 여겨진다.

500원으로 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과자를 사먹기도 껌을 사기에도 부족하다. 유아의 말소리 같다. 하지만 500원은 유아에게도 적은 돈이다. 그렇다면 500원은 가치가 없는 것 아닌가. 500원은 상징이다. 500원은 진정으로 받을 생각은 없다. 즉 500원은 존재적 가치, 자존심을 상징한다. 비록 거지의 취향이나 생각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할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시련과 품격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사유를 쉽게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행색이 초라해도 가치관과 선호는 중요하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 행색이 그래도 인간의 존엄은 있다고 외치는 게 500원이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을 과대 망상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거지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꽃거지라고 한다. 자신이 거지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만, 품격과 교양이 있는 거지임을 나타낸다. 꽃과 거지는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의 자아존중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 하게 어울리게 된다. 이른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외모의 꽃거지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인터넷 상의 거지가 이런 자아존중감이 충만한지 알 수가 없다.

비록 현실의 꽃거지라고 해도 이렇게 외모만으로 선호될지는 미지수다. 거지는 동정의 심리를 자극해 밥을 먹는다. 그 동정을 위해서 라면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일부러 과장을 하거나 꾸미기도 한다. 동정을 자극해 돈을 요구려할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꽃거지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털어놓지는 않는다. 동정을 통한 구걸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큰소리를 친다. 정당하게 동을 내라는 것이다. 그는 육체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해석과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꽃거지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있어도 자아의 가치와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실에서는 부족함이 많을 지라도 꽃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비록 현실에서는 하위층이고 비정규직이지만 꽃과 같은 사람이다. 꽃 정규직, 꽃서민.

글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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