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첫 선을 보인 개콘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은 남성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주로 데이트 과정에서 고충을 겪는 남성들의 심정을 다양한 상황과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2010년 10월 5일 마지막 회에서 ‘남자들이 기를 펴고 사는 그날까지 남보원이여, 영원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남보원은 영원할 수 없었다.
이 남보원의 멤버 중에 하나였던 최효종은 2011년 '애정남'을 통해 독립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여성 편애라는 평가를 들었다. 방통위에 60여건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남보원이 남성 편이라면 ‘애정남’은 여성 편임을 강조했고 남성들이 이에 불만을 터트리며 민원을 제기한 것. 민원은 기각되었고 애정남의 여성 편애는 강화되었다. '애정남'에서는 단지 남성이 여성을 편애했지만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코너도 적극적으로 개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 한참 인기를 끌었던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여성 배우들의 현실을 드러내주었다. 이를 이은 2012년 ‘희극 여배우들’은 남보원의 여성 버전으로 영화 '여배우들'과 달리 기자회견 방식들 통해 배우 여성들의 입장과 현실을 직접 소명, 주장하게 한다. 이후에 이어지는 ‘핑크레이디’는 여성 영웅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어설픈 동작으로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남자 일색의 영웅주의 콘텐츠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다.
남보원의 핵심 멤버였던 황현희는 2012년 10월 '막발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편을 들고 나서 버렸다. 그는 과감하게도 바람을 피는 남성들의 수법을 낱낱히 공개해 버린다. 여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고 남성들은 찔끔거린다. 남성들이 가진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왜 이렇게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일까. 여성의 인권을 정말 생각하기 때문일까? 문제는 과거와 달리 여성을 웃음의 영역에 적극 초대한 결과라는 점이다. 사회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인식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이다.
과거 개그 프로나 코미디 프로는 언론 관련 학자나 비평가, 시민단체에게서 단골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외모비하를 통한 우스개가 많았고, 특히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는 내용이 빈번했다. 못생긴 얼굴이나 뚱뚱한 몸매를 들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겼다. 더구나 웃음의 이론 가운데 우월이론을 중심으로 개그를 구성했기 때문에 질 낮은 내용이라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남을 깎아내리고 혐오하는 독설 개그는 남 여성을 막론하고 이루어진다. '독한 녀석들'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여성을 비하하거나 독설을 내뿜는 개그들은 시청률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여성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개그프로그램도 여성들의 공헌이 매우 큰 방송콘텐츠인데 이점이 간과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처지나 시각을 대변 한다면 더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간 많은 개그 콘텐츠에서 여기에 남자와 여성의 웃음 코드가 다르다는 점이 간과되어왔다.
여성들은 내러티브가 있는 스토리텔링 유형의 웃음을 좋아한다. 이러한 유형의 웃음은 은유적이고 감성을 자극한다. 남성들은 몸 개그나 독설 유형의 웃음을 선호한다. 이는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다.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놓는 토크 오락 프로가 여성들에게 더 인기 있는 이유가 된다. 남성이 좋아하는 유형에만 집중하는 개그프로는 다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여성의 관점에서 일찍부터 적극 반영 해왔다. 하지만 개그프로는 개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스토리텔링형 웃음 꼭지 즉 '분장실의 강선생님'이나 '희극 여배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희극 여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링의 유형이 아니라 독설형 개그였다면 인기는 없을 것이다.
대개 남자들은 웃기는 여자를 싫어한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기본 입장이다. 웃기는 것은 남성들이고 웃는 사람은 여성이며 여성들은 웃기는 남성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잘 웃어야 생존에서 잘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조직에서 여성들은 잘 웃는 역할에만 머문다. 우스개를 하는 이들은 남성이고 그들은 상급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사장님 개그는 웃기지 않음에도 통한다. 그래서 여성 개그맨들이 많지 않은 것은 웃음의 역할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중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남성을 웃기는 여성이라는 생각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성들이 여성을 위해 웃긴다면 다르다. 남성을 위해 웃기는 여성은 비호감일지라도 여성을 웃기는 여성은 호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남성 상급자가 주류일 때는 여성은 웃기만 해야 할지라도 여성이 여성의 시각과 입장, 처지를 대변하는 웃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 ‘희극 배우들’, ‘핑크레이디’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을 적극적으로 포함 시키는 개그프로의 변신이 새로운 혁명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오직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모두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제 변화된 시대에서 남성은 여성을 위해 웃기되 그들의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는 고해성사의 개그를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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