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려던 ‘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가 공항에서 발길을 돌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손연재는 17일 이탈리아의 '세리에A' 초청 대회 선수 등록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주최 측인 이탈리아 체조협회가 항공권을 취소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발길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대한체조협회 측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체조협회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 등록만을 위해 이탈리아에 오가는 것은 선수 컨디션에도 좋지 않다"며 "전국체전 이후에는 태릉에서 훈련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서도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 등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 이탈리아 체조 협회와 연락하는 과정에서 결정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체조협회가 선수 본인과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회 출전을 막은 셈이다. 손연재는 다음달 3일과 17일, 12월1일 총 3차례 세리에A 투어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리에A 1차 대회가 오는 20일 시작, 그 전에 선수 등록을 마쳐야 출전할 수 있다.
체조협회는 선수 등록을 따로 하기 위해 출국하는 것은 무리지만 만약 이탈리아 협회 쪽에서 예외를 적용해 원격 등록이나 대회 당일 등록이 가능하다면 손연재를 출전시킬 계획이라 밝혔다. 하지만 세리에A 초청대회 조직위는 '이탈리아 협회 쪽에서 규정에 예외를 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손연재의 대회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세리에A 챔피언십은 비록 이탈리아 국내 대회지만 지난해 ‘여왕’ 예브게니아 카나에바와 다리아 콘다코바(이상 러시아)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했던 대회다. 초청 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현재 손연재가 세계 리듬체조계의 ‘신성’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손연재의 매니지먼트사 IB스포츠는 "독일과 스페인 등 여러 곳에서 대회에 초청하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이 대회와 겹쳐서 출전을 사양했다"며 "옐레나 리표르도바 코치도 출전을 권장했는데 손연재가 실망이 크다"고 밝혔다.
1차적 책임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체조협회에 있다. 손연재는 리듬제조 선수로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대회 출전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리듬체조 선수로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정당당한 경쟁을 펼치기 위해 출국하려 했다.
그런 손연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도 시원치 않을 체조협회가 손연재 발목을 잡았다. 체조협회는 손연재의 출국 불가 사유로 ‘선수 보호’를 들었지만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까지 왕복하는 데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손연재가 20일쯤 태릉에 입촌해 다음달 3일 첫 출전대회까지 최소 열흘 이상 훈련하고 컨디션을 조절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다.
손연재
그렇게 선수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태릉선수촌에서의 훈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조협회였다면, 수많은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시설인 태릉선수촌 내 승리관과 필승주체육관이 안전진단결과 붕괴 위험성이 높은 D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책발표를 먼저 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국회 문회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대출(경남 진주갑)의원이 최근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손연재가 훈련을 하고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시설인 태릉선수촌 내 승리관과 필승주체육관이 안전진단결과 붕괴 위험성이 높은 D등급을 받았다. 이쯤 되면, 손연재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것이 선수보호 차원에서 과연 바람직스러운 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체조협회의 일방통행도 놀라웠지만 손연재 소속사 IB스포츠의 안일한 일처리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IB스포츠는 손연재가 공항에서 출국불가 통보를 받을 때 까지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조협회와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다.
IB스포츠의 입장에서는 손연재의 대회 출전을 체조협회가 막을 가능성에 대해 ‘설마’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항상 사람을 잡아온 생각은 ‘설마’였다는 사실을 IB스포츠는 간과하고 있었다.
손연재가 분명 IB스포츠에서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선수인 것은 맞지만 분명 체조협회에 등록된 아마추어 선수고, 그 이전에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선수다. 그렇다면 소속사인 IB스포츠는 손연재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손연재의 각종 활동에 대해 체조협회와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선수와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출국불가 상태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소속사로서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손연재가 체조협회로부터 괘씸죄에 걸렸고, 이 참에 체조협회가 손연재 길들이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석에는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되고 있다. 지난달 일본서 열린 이온컵 대회에 손연재의 출전을 요구했지만 불참하자 대한체조협회의 괘씸죄에 걸렸다는 것.
하지만 이 같은 단발성 사건에 의해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손연재 측과 체조협회의 ‘불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2 런던올림픽’을 기점으로 체조계 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계 통틀어 손연재의 위상은 분명 달라졌다. 체조협회는 손연재의 현재 위상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IB스포츠는 손연재의 제반 활동 가운데 체조협회의 존재를 존중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손연재 측과 체조협회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소속사와 협회의 갈등으로 전도유망한 선수가 기량향상의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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