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라, 박정희>"남긴 재산 10조, 독일 대통령이 안만나줘..."
팩트로 말하는게 '기자' 기사가 아닌 입심으로 '폭로'에만 심취
박정희를 놓아주자는데…
저서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과 “이제 박정희를 놓아주자”는 말로 잘 알려진 김형아 교수(호주 국립대)가 필자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동료 교수들과 노래방 가서 흘러간 팝송 ‘let it be’를 불렀다면서 이와 뜻과 발음이 유사한 우리말이 무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필자가 대답을 찾기도 전에 그가 자문자답하길 ‘내비둬’라고 했다. ‘let it be’를 ‘내비둬’라고 반복해서 불렀다는 그의 말이 “박정희를 놓아주자”는 말과 묘하게 맞아떨어져 웃었던 일이 있다.
“박정희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이젠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그의 언론 인터뷰 대목이 화제가 되어 신문 오피니언 란에서도 거기에 동조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필자는 그를 지지해서 놓아주지 않고 있지만,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반대자들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세종대왕, 이순신에 관한 역사적 사실, 새롭지 않은 것을 쓰는 것은 무미건조하다. 박정희 역시 진부한 찬사를 갖다붙여봐야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박정희와 맞짱을 붙어야 이목을 끈다. 그렇게 층격ㆍ화제ㆍ선동에 민감한 매스컴의 생리와 교합해 유명세를 탄 사람들이 있다.
하긴 너도나도 마구잡이로 박정희 비방에 열을 올려대면서 천둥벌거숭이까지 납신거리는 것이 어제 오늘의 판국만은 아니다.
‘꼼수 기자’의 막말…인기 상종가
최근 또 한 사람의 논객이 박정희를 공격해 유명해진 모양이다. 잡지 기자이면서 인터넷라디오 ‘나는 꼼수다’에서 목하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주진우라는 사람이다.
그가 지난달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박정희의 맨얼굴> 출판기념회에서 강연한 ‘박정희 시각 교정’이란 내용이 동영상으로 널리 유포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의 댓글이 그의 인기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말투를 보면 상당히 진지하다. 그리고 기자로서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그의 취재는 발로 뛴 흔적이 있는 팩트를 기초로 한다. 고로 믿을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기 있고 불의를 보면 못참는 유일한 참언론인이 아닌가 한다. 3개의 공중파 방송기자 모두 합해도 주진우를 못당할 거 같다. 주진우라는 기자가 우리한테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천안삼거리 수양버들처럼, 칭송이 늘어지고 있다. 해서, 강연 녹취록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주장을 요약했다.
① 성상납 받으면서 총 맞아 죽었다.
아프리카에서도 기라성 같은 독재자들이 많았지만, 박정희처럼 대학생이나 자기 딸뻘 되는 여자를 데려다가 저녁에 성상납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총 맞아 죽은 독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② 재산 10조가 넘는다.
박정희가 막걸리를 마시고 항상 해진 옷을 입는 등 검소했다지만, 시바스 리갈도 마시고 육영재단ㆍ영남대ㆍ정수장학회 등 남겨놓은 재산이 너무 많다. 지금 팔아도 10조가 넘는다.
③ 육영재단 분쟁.
얼마 전까지 분쟁이 있었다. 용역이 동원되고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내로라 하는 깡패들, HID, 재향군인회 다 왔는데 그쪽에서 박근령이 눌러놓은 땅을 몰아낼 때 박근혜 쪽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동원한 것이 굉장했다.
④ 독재자라서 독일 대통령이 만나주지 않았다.
1964년에 박정희가 독일에 간 것은 맞지만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다. 독일은 이미 민주화가 돼서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 온다고 해서 만나주지 않는다. 박정희는 오자마자 민주화ㆍ시민단체 인사들 데모해서 호텔에서 한발짝도 바깥에 못나갔다고 한다. 함보른탄광 간 건 맞는데 나머지는 다 거짓말이다.
⑤ 광부ㆍ간호사와 경부고속도로.
간호사ㆍ광부들이 가서 돈을 벌어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다. 박정희가 검소하고 자기를 버려서 경제를 살렸다 어쩌구 하는데 그때 따라간 기자들이 허황된 소설을 쓰고 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좌)한독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1964년 12월 8일자 경향신문. (우)서독 차관의 용도 그래프. ⓒ 대한뉴스 캡처
1964년 12월 7일 본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환영식에 나란히 선 모습. ⓒ 국가기록원
1964년 12월 11일 박정희 대통령의 베를린장벽 방문. ⓒ 국가기록원
박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뤼브케 대통령을 맞아 1967년 3월 3일 제1차 한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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