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지역 사람들의 산책코스로 인기 있는 올림픽공원은 전국적인 체육, 종교행사 또는 가요이벤트 등이 열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그 안에 백제건국 중심세력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성곽유적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몽촌토성은 88서울올림픽 이전까지 잊혀진 역사였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몽촌 일대가 세계인들의 스포츠 축제장으로 확정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고대 삼한 때부터 ‘곰말‘로 불렀던 몽촌은 ’큰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몽촌토성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에서다. 고려 때는 광주의 고원성으로 불렀고, 고원은 흙으로 둘러쌓은 담장, 즉 토성임을 말한다. ‘몽촌‘이란 이름은 조선초기부터 불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몽촌토성 전경
몽촌토성의 위치와 규모는 1916년 일제강점기인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때 처음으로 보고됐으며, 그 후 여러 학자들이 이곳을 백제초기의 도성으로 추정을 했지만, 전면적인 조사는 서울올림픽 때 체육시설 조성공사가 추진되면서 1983~1989년 7년 동안 6차례 발굴과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몽촌토성은 북쪽으로 한강과 인접한 풍납리토성, 남쪽은 남한산성의 산세가 병풍처럼 솟아있고, 서쪽은 현재 경기고교 구릉에 있는 삼성동토성 등이 에워싼 중심의 야트막한 산에 쌓은 토성이다. 토성 남쪽에는 방이동, 가락동, 석촌동 적석총 등 백제고분군이 산재해 있다.
몽촌토성 외곽의 해자
‘몽촌토성’은 성벽이라기보다는 둔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허술해 보인다. 하지만 둔덕이 낮거나 끓긴 부분에는 흙으로 기단을 다진 판축으로 성벽을 쌓았다. 성 바깥쪽 경사면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나무기둥을 엮어 만든 목책성을 설치했다. 목책간격은 1.8m 마다 큰 기둥을 세우고, 그사이에 작은 기둥을 세웠다.
토성밖에는 3m 깊이의 뻘층에 물줄기를 끌어들여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성벽둘레는 2.3km, 높이는 지형에 따라 10~40m 내외다. 성벽의 네 모서리는 주변보다 5m 정도 높게 토단을 만들어, 망루와 장대역할을 했다. 성의 동북쪽으로는 270m 정도의 외성이 있다.
성의 출입구는 9개소이며, 이중 남, 동, 북쪽의 문은 배수구로 이용했다. 성벽 전체 모양새는 남북이 긴 마름모 형태다.
몽촌토성은 현재 서울지역 백제고도 민족문화유적 복원계획에 따라 토성을 정비했고, 멸실된 성안의 유적들을 복원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성벽의 기초인 목책과 성 밖의 개펄에 묻혔던 해자도 정비했다. 토성의 전체면적은 13만여 평으로, 풍납리토성 보다는 작지만 백제의 공주 공산성과 부여 부소산성의 규모보다는 큰 편이다.
몽촌토성 정상의 망월봉
수차에 걸려 발굴된 유물은 백제시대 주거지 5곳, 저장공 7곳. 움집터 3곳 등이 확인됐다. 그중에서 와당과 벼루가 발견됐는데, 이 유물의 업무성격상으로 볼 때 행정기능을 맡아보는 공공시설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유물 대부분은 토기였다. 그 수는 수 천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종류는 적갈색, 회백색, 흑색계 연질토기와 회청색 경질토기 등이다. 그중에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호형토기 중 직립단경호는 석촌동 고분군에서도 출토된 3~4세기 것들이다.
5차 발굴 중 대형 수혈건물지에서 나온 철모, 철제가래, 철제가위 등 많은 양의 백제무기류가 처음 출토되자 하계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발굴 건물터는 백제시대의 군사시설로, 당시 무기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됐다. 특히 출토된 동전무늬가 찍힌 자기조각은 중국 서진(265∼316)시대의 유물로 밝혀져 몽촌토성의 초기축조 연대는 3세기까지로 추정 할 수 있다. 성내 주거지나 저장고에서 중국 육조시대의 청자편 도자기류와 4~5세기의 백제토기가 발견되는 것을 볼 때, 몽촌토성은 적어도 3세기에서 5세기 말까지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거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복원된 몽촌토성 성벽도로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나각순 박사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몽촌토성은 주변에 종합체육경기장이 건립되고, 올림픽공원이 조성되자 국제적 명소가 됐고, 토성 안에 있는 몽촌역사관은 서울역사박물관의 고대역사관으로 활용하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며, "2천년 고도 서울은 이제 역사와 사람이 조화되고, 자연과 사람이 조화되는 문화도시로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데일리안 = 최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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