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티(納拉提) 초원

입력 2010.01.19 10:06  수정

<들찔레의 편지 272>세상에서 온전한 자유란 어떤 상태를 일러 말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으면 이런 초원으로 와보기를 희망한다

신강위구르의 속살 같은 풍경 V

점심을 먹고 나서야 싸이리무 호수지역을 벗어났다. 굳이 벗어났다는 말을 쓰는 이유는 3년 째 공사를 하고 있는 험악한 비포장 길에 대한 지긋지긋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이 비포장 고갯길에 과일이 풍성하게 나는 곳이어서 지금도 이 지역을 통칭하여 과일도량이라 부른단다.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과일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산록이다.

나라티초원 가는 길, 백양나무들의 사열을 받다

이닝으로 들어서기까지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을 한다. 규동에서 약 750km, 우루무치에서 약 1000km 떨어진 위구르지역의 서쪽 변경도시 이닝 근처를 지난 것은 점심식사 후 3시간을 지난 오후다. 도시가 형성된 어느 오아시스를 도착하던지 도시 인근에 도착하면 외곽 마을의 백양나무 숲이 짙게 드리우고 신작로를 따라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닝 시내에서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곧장 나라티초원을 향한다. 나라티 초원은 이닝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길을 잡아 4-5시간 걸리는 곳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신원(新源)현에 나라티진(鎭)에 속한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리(里)쯤 되는 작은 마을인데 국립공원 탓에 유명해진 곳이다. 규동에서 나라티까지 직선거리로는 멀지 않음에도 천산산맥이 가로막혀 이닝까지 우회하여 먼길을 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여행자들도 실크로드 천산북로에 해당하는 키르키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가기 위한 관문으로서 이닝을 방문하는 경우는 많으나 정작 반대편의 나라티초원 쪽을 여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라티초원 가는 길, 거친 흙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중국정부에서는 신강위구르지치구에서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은 지역이 다섯 곳이 있는데 나라티초원이 속한 신원지역도 그 중 한 곳이다. 그 외 네 곳은 카슈가르 인근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치아(烏恰), 공류(鞏留), 그리고 이닝(伊寧)과 신원(新源) 사이에 있는 니러커(尼勒克)현, 나라티 초원에서 약 80km 떨어진 바인부르커(巴音布魯克) 초원이 있는 허징 즉 화정(和靜)현이다. 이곳들은 외국인의 경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낮에 관광을 할 수는 있으나 지정된 장소 외에서는 숙박을 할 수는 없다. 이런 비 개방 지역은 중요 군사 시설이 있는 곳이거나, 중국 자치 정부와 소수 민족의 마찰이 자주 발생하는 곳들이다.

나라티초원 가는 길, 끝 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나라티초원을 향하는 길은 카나스에서 규동과 이닝을 지나온 길에 비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푸얼진에서 규동에 이르는 길은 신장위구르 지역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길인데 그 척박함은 오히려 타클라마칸 사막보다 황량했다. 따라서 멀리 강이 흐르고 그 양편에는 끝없는 해바라기 밭이 펼쳐져 있으며 올망졸망한 마을들이 동화 속의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온해졌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강가까지 걸어본다. 넘치는 수량에 놀라고 그 물이 맑음에 또 놀란다. 황톳빛 강 언덕에 대비되는 물은 정맥처럼 시퍼렇고 도도하게 흐르는데 그 물을 먹고 자란 해바라기는 조금씩 기우는 햇살을 받아 노랗게 타고 있다. 카메라를 든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과 해바라기 밭, 강을 번갈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도대체 이 세상 사람 중 몇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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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라티초원에 도착하려면 멀었는데도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운다. 해지는 시간은 슬프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근원적인 슬픔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특히 이런 객지에서 맞는 황혼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깊이는 가는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알 수 있으며 그로부터 순한 마음이 되어 울컥거리는 여행자의 외로움조차 기쁨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시간인 것이다.

나라티초원 가는 길, 백양나무 가로수 사이로 하오의 햇살받은 들녘

차는 더 빠르게 속도를 내고 길 가 백양나무 가로수가 오래된 필름이 영사기 속에서 돌 듯 스쳐 지난다. 멀리 햇살을 받은 바위산은 빛을 발하고 붉은 흙의 둔덕은 더 붉다. 산 아래 들판에는 초록의 작물들이 더 짙은 색으로 붉은 산의 빛깔과 보색대비를 이루며 집의 흙벽들은 따스한 질감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나라티에 도착 즈음 이미 해는 한 뼘도 남지 않았고 얕은 개울에 비친 석양빛이 숨을 멎게 만든다. 물가에 서서 그 풍경을 사진에 담는데 제법 공기가 차다. 깊은 산골의 여름밤처럼 맑은 공기 한 가득 들이 쉰다.

나라티초원 인근에 도착하여 만난 석양과 강물

풀벌레 소리 들리는 방에 누우니 매우 공기가 차다. 이런 날, 추위에 밤잠을 설치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두터운 겨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양말까지 껴 신고 침대에 든다. 카나스호수가 그랬듯이 나라티초원 지역도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중국대도시 사람들이나 위구르족에게는 아주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특히 중국대도시 사람들에게 최근 들어 이런 숨겨진 곳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으며 밤 깊은 시간에도 방갈로형 호텔에는 속속 여행객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호양나무 숲 속에 새벽이 열리고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옷을 더 챙겨 입고 산책을 나선다. 웬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새벽에는 얼굴과 발에서 느끼는 냉기에 몇 번 잠이 깨다가 일어난 것이다. 호텔 방을 나서니 아주 오래된 호양나무 숲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호양나무가 타클라마칸 사막 가운데서 앙상하게 뼈대만을 드러낸 채 서 있는 풍경을 본 기억이 새롭다. 그에 비해 이곳은 풍부한 물을 머금을 수 있어서인지 높이 20여m에 이르고 둘레가 두 아름드리를 넘는 큰 나무들이 풍성한 아침 숲을 이루고 있다.

나라티초원에서의 해맞이 I

얼굴에 스치는 찹찹한 냉기가 싫지 않은 것은 그만큼 공기가 맑기 때문이다. 뜀박질을 하면서 약간의 땀이 배자 간밤의 추위가 몸 속에서 빠져나가고 훈훈해졌다. 그렇게 약 2km를 뛰어 강가에 도착하니 해가 떠오른다. 먼 산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맑고 붉다. 어제 이곳에 도착하면서 본 석양이 황금빛이 드리운 주황색이었다면 아침 해돋이는 붉은 색에 가깝다.

나라티초원에서의 해맞이 II

그 옛날 징기스칸의 군대가 한밤중에 이곳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고 나서 맞은 아침 풍경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 "나라티"라고 감탄을 자아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곳 나라티초원에 아침이 밝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곳 사람들도 ´나라티´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에게 물어보아도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나라티´는 태양과 연관이 있는 단어라는 짐작은 가지만 당시 몽골인들이 외친 이 소리를 이곳 카자흐족 사람들이 잘못 알아들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인지 모른다.

아침 식사 후 나라티 마을에서 약 18km 떨어진 나라티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나라티 초원은 대동구(大東溝) 풍경구, 녹명봉(鹿鳴峰) 등산구, 운삼(雲杉) 관상구의 3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서도 시설이 깨끗하진 않지만 공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전기버스를 이용한다.

나라티초원 풍경 I

얼마 가지 않아 왼편의 높은 산록과 좌측과 앞에 나타나는 광활한 초지(草地)가 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말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고 절정을 지난 들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아직 무성하다. 평일임에도 여름 휴가를 즐기러 온 중국인들, 특히 위구르족과 카자흐족들로 붐비는 이곳은 초원이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평원만 하여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초원은 이곳에서 우루무치에 이르기까지 460km구간에 펼쳐져 있다고 한다.

한 시간 여, 평지로 이루어진 초원 가운데 서서 짧은 산책을 하고 키 낮은 들꽃들과 입맞추기, 눈맞추기를 한다. 이곳 어느 산록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톱풀이나 바늘꽃 그리고 민들레 종류의 노란 꽃이 소담스럽다. 해가 제법 높이 오른 오전의 중간쯤이나 아직 긴소매 옷에도 찬 기운이 남아있다.

나라티초원 공중정원 오르는 산길에서 내려다본 밀밭 풍경

이제부터 녹명봉(鹿鳴峰) 등산구를 따라 올라서 나라티초원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어 공중정원(空中庭園)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만원버스에 짐짝처럼 실려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오르는 산길에서 아래 평원을 바라본다. 여름이지만 높은 지대라 가을걷이 한창인 밀밭과 초록의 대지가 만드는 풍경이 이채롭다.

나라티초원 풍경 II

산꼭대기로 향하던 버스가 지쳐 굉음을 내며 큰 숨을 몇 번인가 토해내더니 눈앞에 끝없는 초원을 두고 멈추었다. 산을 오르기 전 둘러보았던 초원과는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곳 공중정원에 와보지 않고는 나라티초원을 본 것이 아니라던 매표소 직원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평균 해발 1600m, 총 면적 1800㎢로 세계 4대초원의 하나라는 나라티초원의 중심과 내가 비로소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다.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인 산이 보인다. 이곳은 신강위구르자치구를 남북으로 나누는 천산산맥 산록의 중간지점인 중천산 지역에 해당한다. 남쪽이 척박한 타클라마칸 사막의 시발점인데 비해 이곳 북부 산록은 풍요로운 초원과 오아시스 지대이다. 이 높은 산 위 곳곳에 얼음 녹은 물이 흐르고 이것들이 산아래 평지로 흘러 곡창을 이루고 풍요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나라티초원 풍경 III

여느 사람들처럼 말을 빌려 타고 천천히 초원을 달린다. 말발굽이 풀을 스치는 소리, 내 귀로 흔들리며 들리는 작은 바람소리, 곳곳에 무더기로 핀 꽃들의 흔들림, 그리고 목동들이 부는 휘파람소리가 고요한 초원 위에 울려 퍼진다. 말 위에 앉아 이런 모습을 보고 들으며 습자지에 물이 배는 것처럼 자연에 동화되고 스스로 스미는 나를 발견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런 느낌이 오는 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런 느낌 받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온전한 기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에서 내린 곳이 아득히 먼 곳에 점처럼 보이는 곳에서 말에서 내려 초원을 걷는다. 군데군데 방목된 말이나 소들이 풀을 뜯는데 자세히 보니 풀만 아니라 꽃을 더 잘먹는다. 넓은 초원에 비해 꽃이 적다 싶었더니 방목된 가축들이 다 먹어치워서라고 한다. 6월부터 이 초원에 꽃이 만발하는데 6월 중순이면 이미 방목이 시작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들꽃을 보려면 6월 초에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라티초원 풍경 IV

다시 말을 탄 곳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전기로 움직이는 카트를 타고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더 먼 곳으로 들어가 본다. 다리가 끊겨 새 다리를 놓느라고 카트가 지나갈 수 없는 곳에서 양말을 벗고 물을 건너기 위해 들어섰다. 너무 차가워 몇 발짝 가지 못한다. 개울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시린 발을 붙잡는다. 고통스러운데도 이런 고통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싶은 생각이 퍼뜩 스친다. 인근 바인브로커초원의 뜻이 "샘이 풍부한 땅"이라는데 물이 있으니 초원도 있을 것이지만 나라티초원 또한 물이 매우 풍부한 것이 놀랍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초원 깊숙한 곳으로 내달린다. 이미 사람의 인적이 끊긴 것 같은데 드문드문 방목을 위해 거주하는 카자흐족들의 파오가 보이고 집을 지키던 개들이 나를 보고 짖는다. 짖어대는 개는 이곳 사람이 아닌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의미에 더해 심심하던 차에 일이 생긴 것이다. 개 짖는 소리는 초원 멀리로 흩어지고 바람 소리 귓전에 웅웅거린다.

나라티초원 풍경 V

잠시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풀을 뜯는 말이니 가축은 마치 도를 통한 신선 같은 느낌이다. 세상에서 온전한 자유란 어떤 상태를 일러 말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으면 이런 초원으로 와보기를 희망한다. 자연 속에서 하루의 일을 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사람,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어느 동물 한 마리, 그 동물이 배설물과 햇볕, 바람으로 비옥해지는 땅, 그 대지 위에 자라는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가 온전한 평화와 자유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나라티초원에서의 하루 밤낮은 맑은 햇살과 석양빛, 초록 물이 듬뿍 든 호양나무 숲과 초원 그리고 땅 위에 낮은 키로 자라는 들꽃을 바라보는 만년설 덮인 산자락이라는 모티브들로 채워졌다. 아마 이런 풍경들은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저장되고 기억의 한 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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