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죽음의 무도´ 버리고 아름다운 모험 감행
아사다, 지난 시즌 프리음악 그대로 들고나와
역시 김연아(19·고려대)는 ‘피겨여왕’이었다.
김연아는 17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서 열린 ‘2009-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1차대회 트로피 에릭 봉파르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합계 76.08(기술점수 43.80/예술점수 32.28)을 받으며 가뿐하게 1위를 차지했다.
김연아가 이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따낸 76.08은 지난 3월 미국 LA서 벌어졌던 ‘2009 세계피겨선수권’에서 수립한 자신의 최고기록이자 세계 최고기록인 76.12에 불과 0.04점 모자란 점수다.
김연아, ´죽음의 무도´에 미련 없다!
타조의 날갯짓을 보는듯한 카롤리나 코스트너(22·이탈리아)의 독특한 제자리 돌기(싯스핀)도, 아사다 마오(19·일본)의 필살기 공중 3회전 반 점프도 소용이 없었다.
나카노 유카리(24·일본)의 개성 있는 의상도, 캐롤라인 장(미국)의 중국 기예단 버금가는 연체에 가까운 비엘만 스핀도 ‘본드걸’ 김연아를 뛰어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연아는 영화 007 본드걸처럼 허공에 권총 한 방 쏘는 포즈 하나만으로도 경쟁자들의 ‘필살기’ 향연보다 더 큰 관중의 환호와 갈채를 이끌어냈다. 그녀의 연기에서는 인간의 가슴을 울리는 매혹적인 그 무엇인가가 묻어났다.
사실, 김연아의 본드걸 변신은 시즌 전 우려를 낳기도 했다. ‘죽음의 무도’가 지난해 김연아를 피겨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쇼트부문 세계신기록 경신, 종합점수 세계신기록의 디딤돌이 된 최고의 쇼트음악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피겨 팬들은 ‘죽음의 무도’에 대한 기억은 잠시 지우고 아름다운 변신과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영화 007 캐릭터 본드걸로 변신한 김연아가 ‘죽음의 무도’를 넘어서는 매력적인 연기를 펼쳐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심판진도 매료된 듯, 합계 76.08점의 고득점을 선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즌 첫 대회에서 아직 몸에 설익은 ‘본드걸 안무’로 세계피겨 역사상 최고의 쇼트인 ‘죽음의 무도’를 단번에 뛰어넘을 뻔 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김연아의 섬세한 기술과 연기력은 완벽 그 자체였다.
최고 난이도에 속하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출발로 단독 트리플 플립, 단독 더블 악셀 점프를 멋지게 구사했다. 이어 장기인 스피이럴을 비롯해 남성의 박력과 여성의 섬세한 리듬감이 조화를 이룬 스텝연기, 화려한 스핀 기술들을 펼쳐보였다.
화려한 연기와 완벽한 기술도 빼어났지만, 무엇보다 김연아가 돋보였던 이유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의식에 있다.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정상에 세웠던 ‘죽음의 무도’를 과감히 버리고 본드걸을 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에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역시 김연아다운 발상”이라면서 제자의 용기에 감탄했다.
김연아는 “피겨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신기록 경신이나 메이저대회 우승 성적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고 원초적인 감동을 주고 함께 숨 쉴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아름다운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김연아의 이런 정신은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새로운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고 있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올 시즌 첫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지난 시즌 프리 스케이팅 배경음악과 같은 가면무도회를 들고 나왔다. 또한, 여전히 성공확률이 낮은 트리플 악셀 점프가 쇼트프로그램의 ‘주’가 되면서 쇼트전체가 흔들렸다.
이번 대회에서도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에 실패(3회전 반을 1회전 반만 회전), 쇼트프로그램 마지막까지 불안정했다. 결국 마오는 첫날 쇼트에서 58.96점(기술29.80/구성29.16)으로 1위 김연아(76.08), 2위 나카노 유카리(59.64)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이쯤 되면, ‘김연아의 본드걸 변신은 무죄고, 아사다 마오의 가면무도회 안주는 유죄’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데일리안 = 이충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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