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X’ 포스터ⓒSBS
요즘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가 화제다. 1회 시청률 11.4%로, 시작부터 10%를 돌파하더니 6회엔 19.5%에 이르러 20%에 육박하기도 했다. 웬만한 인기 콘텐츠도 시청률 10%를 넘기 어려운 것이 최근 분위기에서 19%를 넘은 시청률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시청자의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는 이야기인데 출연진을 보면 이러한 성과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히트작은 보통 남성 한류스타들이 이끌게 마련인데 ‘닥터X’는 김지원이 원톱 주연이다. 김지원을 받쳐주는 로맨틱한 남성 캐릭터도 없다. 김지원도 물론 히트작이 많은 스타배우이긴 하지만 여성 캐릭터 혼자서 단독 간판으로 극을 이끌면서 작품을 크게 흥행시키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닥터X’의 성과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이 작품이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이야기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닥터’를 내세운 것처럼 이 작품은 의사 이야기를 다룬다. 닥터는 닥터인데 이름이 ‘X’라고 돼있다.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라 특수하고 신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닥터X라는 이름은 드라마에만 있고 현실엔 없는 판타지 의사를 가리킨다. 현실의 의사들은 ‘하얀 마피아’로 표현됐다. 마피아는 조폭처럼 이익을 탐하면서 위계와 소속을 우선시하는 조직문화를 가리킨다.
즉,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는 하얀 마피아와 다름없는 의사 사회에 닥터X라는 신비로운 초현실적 의사 히어로가 나타나 통렬한 일격을 가한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고 있다. 드라마가 그런 설정을 담자 폭발적인 호응이 나타난 것이다. 의료계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어떤 지를 알 수 있다.
우리 드라마에서 병원은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열정을 간직한 의사들이 분투하는 공간으로 그려졌었다. 작품의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밝았다. 그랬던 이미지가 뒤집힌 것은 지난 2007년 ‘하얀거탑’ 때였다. 이 작품은 병원을 하얀거탑이라고 표현하며 의사들간 권력투쟁의 장으로 그렸다.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은 천재 외과의사인데 그런 실력을 환자가 아닌 출세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활용했다. 장준혁과 대립하는 의사들도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파벌을 갈라 음모와 협잡을 일삼았다. 뒷돈 같은 부정부패는 일상으로 그려졌는데 병원을 이렇게 어둡게 그린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하얀거탑’ 이후 대형병원이 이익을 우선시하는 냉혹한 공간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화됐다. 주류 의사들도 의사의 본분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난 2016년에 큰 인기를 끈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러한 대형병원 문화를 거부한 낭만적 의사 김사부가 강원도 산골의 돌담병원이라는 판타지적 공간에서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 설정들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이번에 급기야 의사들을 마피아로까지 지칭한 드라마가 나오자 시청자들이 뜨겁게 호응한 것이다. 의사에 대한 국민정서가 그만큼 악화됐다는 얘기다.
결정적 계기는 윤석열 정부 때의 의료파업이었다. 정부의 급작스러운 의대 정원 대폭 증원 정책이 과도하긴 했으나 거기에 대응하는 의사들의 모습도 국민정서에서 크게 벗어났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무력화하고 정부를 무릎 꿇리는 모습에 의사가 특권집단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꿈이 아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의대에 간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그러면서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커지가 그것이 대중문화에 반영되는 것이다.
‘닥터X’는 해외에서도 반응이 터졌다.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비영어 TV쇼 글로벌 1위(10월 5~11일)에 오른 것이다. 외국은 병원에 대한 불만이 한국보다 더 클 수 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에 찬사를 보내는 것 중의 하나가 의료서비스다. 자신들의 나라에선 의료비가 너무나 비싸거나, 혹은 의료 서비스가 지나치게 비효율적일 경우가 많은데 한국 병원에선 저렴하게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 병원에 불만이 크지만 그런 한국 병원을 최고라고 여길 정도로 자국 병원에 불만이 큰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 작품에 나온 의료계에 대한 야유가 외국인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는 국제적으로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이런 의료서비스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한국 의료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필요하다. 무조건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자를 도외시하는 듯한 의료파업이나, 비인기 진료과와 비인기 지역의 의료 소외현상, 의사를 특권적 신분으로 여기는 듯한 일부 행태들이 국민정서를 악화시킨 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속 시원하게 질타할 대상을 찾는 콘텐츠 업계에선 병원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화되는 분위기다. 앞으로도 ‘하얀 거탑’에서 무리지어 이익을 좇는 ‘하얀 마피아’들을 콘텐츠 속에서 보게 될 것 같다.
ⓒ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