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업 50.6%, R&D 인력 근로시간 유연화 요구
규제특례 320여개 추진…핵심 노동특례는 미정
장시간 노동 및 임금 저하 우려…건강권 보호 관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지방으로 유치하기 위한 초광역특구법 논의에서 연구개발(R&D) 인력의 근로시간 유연화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6일 국회와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노동특례를 담은 박상혁 의원안과 이를 제외한 최기상 의원안을 각각 발의했다. 두 법안은 여러 지방정부를 초광역 산업권으로 연결해 기업에 인허가와 재정·금융 지원 등을 제공한다는 기본 틀은 같다. 다만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규제를 조정할지를 두고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지난 23일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320여개 규제특례를 결합한 초광역특구 구상을 발표했다. 로봇,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2027년 상반기 권역별 특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기간 단축도 이러한 투자 여건 개선의 일부다.
첨단기업 절반 근로시간 유연화 요구…시설 지원과 인력 운용 결합 필요
노동특례에 대한 산업계 수요는 기업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7월 전국 50인 이상 국가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 468곳을 조사한 결과, 50.6%가 특구에 가장 필요한 노동규제 특례로 ‘R&D 인력 근로시간 유연화’를 꼽았다.
특구 활용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66.7%였다. 전체 응답자의 49.4%는 파격적인 규제특례와 지원책이 보장돼야 특구를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특구의 성공 과제로 ‘노동·안전·환경 등 핵심 규제 면제 및 유예’를 꼽은 기업은 42.9%였다. 전력·용수 등 산업 인프라 구축은 36.5%, 우수 인재 확보와 정주여건 지원은 29.5%였다.
산업계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요구하는 이유로는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는 반도체 공정 개선과 제품 검증, 신기술 개발의 특성이 거론된다.
공정 개선과 제품 검증에는 연구인력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산업계는 개발 일정에 맞춰 전문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면 연구개발 속도를 높이고 기술 경쟁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근로시간 예외제도로 충분한가…건강권 보호 관건
노동특례를 별도로 도입해야 하는지를 두고는 기존 근로시간 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거쳐 주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활용하면 현행법에서도 일시적인 초과근로가 가능하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역시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최대 3개월의 정산기간을 인정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3일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임금 지급과 건강권 보호를 강조했다. 시행령 개정이나 특별연장근로 승인 절차 개선을 검토하도록 주문하면서 별도 특례 신설 이외의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예외가 장시간 노동과 임금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0일 성명에서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생활조건을 후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일방적인 초광역특구법 발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노동특례를 포함한 법안이 발의된 데 반발하고 있다.
노동특례를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되더라도 적용 직무와 기간을 제한하고, 근로시간 기록과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문제가 남는다. 경영계 역시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합당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구체적인 보호장치를 법률이나 하위법령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관건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초광역특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가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책임감 있게 대화를 조율해 좋은 결과를 도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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