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들 경영상 판단 재량 인정…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 불인정
자기주식 취득 재원 관련 상법·정관 위반 주장도 배척
2024년 경영권 분쟁서 촉발…청구액 8369억원으로 늘어
고려아연 사옥 전경 ⓒ고려아연
영풍이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이사진을 상대로 제기한 8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고려아연 이사들의 자기주식 취득 결정이 경영상 판단의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취득 재원과 관련해서도 법령 위반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김석범)는 이날 영풍이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사들의 경영상 판단에 일정한 재량이 인정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고, 그 내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았다면 이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선관주의의무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충실의무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뜻한다.
재판부는 고려아연 이사들이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외부 법률자문과 관련 가처분 사건의 법원 결정 등을 검토한 뒤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봤다.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 조달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한 만큼 이들의 행위를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 위반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한 자금이 위법하게 조성됐다는 영풍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특정 용도로 설정한 임의준비금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한 것은 상법에 어긋나며, 이를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결의로 결정한 것도 정관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상법상 자기주식 취득가액 한도 규정이 회계상 취득 가능한 금액의 총규모를 제한하는 조항이라고 해석했다.
영풍이 문제 삼은 임의준비금은 해당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봐 자금 사용과 관련한 위법 주장 역시 배척했다.
이번 소송은 2024년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자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공개매수로 맞대응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고려아연 주식의 주당 가격이 56만원 수준이었지만, 이사회는 주당 89만원에 주식 204만30주를 공개매수하기로 결정했다. 영풍은 이처럼 높은 가격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탓에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영풍은 같은 해 11월 최 회장 등 이사 10명을 상대로 고려아연에 약 6732억원을 배상하라며 주주대표소송을 냈다. 이후 고려아연은 올해 4월 소송 청구액이 약 8369억원으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다.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원고 주주가 아니라 회사에 귀속된다.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일군 영풍그룹에서 1974년 설립됐다. 양측은 오랫동안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장씨 일가가 영풍과 전자 계열사를 맡는 방식으로 협력해 왔다.
하지만 2022년 최 회장 취임을 전후해 양측이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신사업 투자와 배당 정책 등을 둘러싼 견해차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의 대립으로 번졌고, 이번 소송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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