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마음을 보듬는 글쓰기법을 전한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
‘인간의 기본권’ 그림으로 풀어낸 ‘사람이 사는 미술관’ 등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출판 시장은 위기지만,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랜 출판사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장을 지탱 중이고, 1인 출판이 활발해져 늘어난 작은 출판사들은 다양성을 무기로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다만 일부 출판사가 공급을 책임지던 전보다는, 출판사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대형 출판사부터 눈에 띄는 작은 출판사까지. 책 뒤, 출판사의 역사와 철학을 알면 책을 더 잘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봄
◆ 번아웃 끝에 찾은 온기…치유의 메시지 전하는 그래도봄
출판사 그래도봄은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기획편집자로 일하던 오혜영 대표가 설립했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중 번아웃이 와 퇴사 후 출판 업계를 잠시 떠나있기도 했지만 새롭고 다양한 일에 도전하던 중 “내가 잘하고 즐기는 일이 출판”이라는 것을 깨닫고 과감하게 그래도봄을 열었다. ‘정말 필요하다고 믿는 책’을 만들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심리상담자 박미라가 고단한 마음을 보듬는 글쓰기법을 전한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을 시작으로, 그동안 연구하고 실천해 온 치유 글쓰기 방법을 한 권에 모은 실습서 ‘치유하는 글쓰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5년 넘게 일해 온 박민경 작가가 ‘인간의 기본권’을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 ‘사람이 사는 미술관’ 등 그래도봄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을 꾸준히 출간 중이다.
이 외에도 ‘나 자신을 지켜내는 여정’을 담은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엄마이자 주부, 환자이자 한 사람으로서 삶의 균형을 잡기 어려웠던 오승희 작가가 유일한 안식처로 미술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치열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책이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작가가 쓴 오페라 책 ‘디어 마이 오페라’, ‘당신 곁의 아리아’ 등도 있다. 이에 대해 “오페라의 아리아는 이야기 속 인물의 내면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에 터져 나오는 노래다. 차분히 듣다 보면 한 사람의 갈등과 진심을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고, 절망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수백 년 전 무대 위 인물이나 지금의 우리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 보는 경험을 독자에게 건네고 싶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그래도봄의 책에 대해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남는 책이 필요하다. 보여주기 위한 독서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나와 세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 인문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바로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볼 것도, 물어볼 곳도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보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것, 그게 지금 그래도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 같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책을 ‘필요한’ 책으로 꼽으며 “수많은 감정, 생각, 심리적 상태가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들을 들여다볼 시간도, 설명할 언어도 갖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간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들로 넘쳐나는 가운데, 내가 왜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차분히 짚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봄의 책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나아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도록 돕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도봄
◆ 읽기 넘어 쓰기로…독자와 함께 완성하는 위로
그래도봄이 진심을 담아 풀어낸 메시지를 곱씹을 수 있는 책도 있다. 최근 ‘100 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은 ‘필사’라는 친숙한 형식을 통해 책의 메시지를 곱씹게 한다. 책에는 현직 교사이자 고전 전문가 박균호 선생님이 교과서 속 33권의 고전에서 고르고 고른 핵심 문장들이 담겨있다. 오 대표는 “단순히 좋은 문장을 옮겨 적는 데 그치지 않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게 만드는 책”이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내 생각을 의심해 보고, 천천히 판단하는 힘은 결국 한 권의 책을 끝까지 붙들고 읽는 경험에서 길러진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읽는 것을 넘어, 독자들의 ‘쓰는’ 시도를 도와주며 출판사의 역할을 넓혀나가고 있다. 2024년 오 대표는 ‘읽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읽는 독자’를 위한 ‘내 글에도 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독자들이 자신들만의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게 도왔다. 오 대표가 글감을 제공하면 독자들이 글을 쓰고, 30일 동안 쓴 글을 엮어 PDF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로 매주 2명을 선정해 공유서재 체험을 선물하고, 한 달 뒤엔 글쓰기 강연도 열었다.
오 대표는 이 경험에 대해 “읽는 것만큼이나 쓰고 싶은 독자가 많다는 걸, 그리고 그런 독자에게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책을 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면서 “생각해 보면 그래도봄의 첫 책도 글쓰기 책이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화려한 굿즈로 시선을 끌거나 빠른 전개로 독자들의 즉각적인 흥미를 유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봄은 자신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독자들이 온전히 즐겨주길 바랐다. 오 대표는 “그래도봄의 책은 조금 느리고 수수해 보일지도 모르겠다”면서도 “하지만 저희 책은 작가와 편집자가 오랜 시간 소통하며 집요하게 고민한 끝에 세상에 나온다. 그래도봄에 유독 국내 작가의 책이 많은 이유 역시, 작가와 마주 앉아 기획, 차례, 문장 하나하나 함께 빚어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독자분들도 조금은 느긋하게 이 책들을 음미해 주셨으면 한다. 마음에 닿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가만히 필사도 해보고, 때로는 그 문장에 기대어 자신의 하루를 적어 보면서요. 행간에 스민 사람의 체온과 고민을 느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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