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화웨이, 美 퀄컴과 다년 간 특허 상호 사용계약 체결
화웨이, 퀄컴에 로열티 지급보다 받는 금액 더 많을 전망
2019년 美 제재 이후 기술자립을 위해 R&D에 집중 투자
화웨이 누적 특허사용권 계약금액 규모 7조원 넘어설 듯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2월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민영기업가 좌담회에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華爲)가 미국의 반도체·무선통신기술 업체 퀄컴으로부터 로열티(특허 사용료)를 받을 전망이다. 두 회사가 서로 보유한 특허를 사용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데, 퀄컴이 화웨이에 지급하는 액수가 화웨이가 퀄컴에 내는 금액 규모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과거 미 기업에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특허 사용료를 내던 중국 기업이 이젠 오히려 미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위치로 격상된 것이다.
화웨이와 퀄컴 양사는 지난 5일 두 회사가 보유한 특허를 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년 간의 특허 사용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소속 인터넷 영문매체 닛케이 아시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보도했다. 이번 계약 대상에는 인공지능(AI)과 5세대 이동통신(5G), 컴퓨팅, 네트워크 관련 기술이 포함됐다.
특히 계약 대상에는 반도체 관련 특허도 들어있다. 화웨이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는 핵심 장비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도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미세하게 만드는 데만 의존하지 않고 칩을 여러 층으로 쌓아 신호를 전달하는 회로 간 거리를 줄임으로써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계약은 두 회사의 특허 포트폴리오(자산)를 서로 이용하는 상호사용(Cross-licensing) 방식이다. 구체적인 계약기간이나 특허 사용료 규모 등 세부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을 사전에 당국에 신고하도록 규정한 ‘하트·스콧·로디노(HSR) 반독점개선법’에 따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사전승인 심사 기준선인 1억 3390만 달러(약 1792억 7800만원)를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닛케이 아시아는 전했다.
중국 광둥성 둥관에 있는 화웨이 통신장비 생산공장에서 한 직원이 기계의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AP/뉴시스
특히 퀄컴은 화웨이가 미국에서 보유한 AI·컴퓨팅·네트워크 관련 특허 일부를 별도로 매입하기로 했다. 닛케이 아시아는 “화웨이가 2001년 퀄컴의 2G·3G 이동통신 기술에 널리 사용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라이선스를 도입하며 거액의 로열티를 내기 시작한 지 25년 만에 두 회사 간의 특허 사용료 흐름이 사실상 역전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SCMP도 “퀄컴이 화웨이의 특허를 이용하고 매입하기 위해 비용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퀄컴 측은 6일 중국 경제매체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을 통해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이 같은 보도는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화웨이가 보유한 미 특허 일부를 매입하기로 한 사실은 확인했다.
미 정부의 강력하고 집요한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속에서도 화웨이는 통신 표준 특허(SEP)를 비롯해 빛으로 반도체를 연결하는 광학 패키징 기술과 독자적인 반도체 시스템 설계 등 첨단 AI 반도체 분야의 핵심 기술을 꾸준히 확보해왔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대표적인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업체 퀄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일부 분야에서는 화웨이의 특허를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판즈융(樊志勇) 화웨이 최고지적재산권책임자(CIPO)는 “수십년 간 기초기술에 단행해온 천문학적인 R&D 투자가 화웨이를 모바일 산업의 확고한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며 “퀄컴과의 이번 계약은 우리의 혁신 가치가 전 세계에 입증된 상징적 사건”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계약을 통해 퀄컴은 미국에 등록된 핵심 특허를 포함해 화웨이가 보유한 680건 이상의 특허 포트폴리오(자산)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2018년 12월12일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멍완저우 화웨이 당시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동행한 경호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이란 제재위반 혐의로 미국이 요청해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된 멍 부회장은 앞서 캐나다 법원으로부터 1000만 캐나다 달러(약 94억 3000만원)의 보석금과 전자발찌 착용 조건으로 보석 허가를 받았다. ⓒ AP/뉴시스
퀄컴 역시 화웨이의 특허 경쟁력을 공식 인정했다. 존 한 퀄컴 기술라이선스(QTL) 총괄 수석부사장은 “이번 계약은 5G 기술을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화웨이가 이뤄낸 끊임없는 혁신과 지식재산권을 인정한 결과”라며 "동시에 기초 무선기술 분야에서 퀄컴의 선도적 지위가 산업계 전반에 확고히 재확인됐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덕분에 화웨이의 누적 특허 사용권 계약 규모는 69억 달러(약 9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는 2021년부터 다른 기업들에 지급하는 로열티보다 특허 라이선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많아졌다. AI 등 첨단 정보통신 분야에서 해외 기업에 특허 사용료를 받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미국의 집중 제재 이후 글로벌 스마트폰 하드웨어 수출길이 막히면서 화웨이가 통신·컴퓨팅 원천 특허를 수익화하는 노력이 가시적인 결실을 맺은 셈이다.
화웨이는 앞서 지난 8월26일엔 미 PC 업체 휴렛팩커드(HP)와 와이파이(Wi-Fi·무선 인터넷 연결) 기술 등을 서로 사용할 수 있는 다년간 특허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화웨이가 보유한 와이파이 특허를 HP의 컴퓨터와 주변기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휴렛팩카드 역시 보유 특허를 화웨이에 제공하는 특허 상호 사용계약 방식이다.
와이파이 기술은 화웨이가 가장 많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부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스마트폰을 제외한 16억대 이상의 소비자 전자기기에 화웨이의 와이파이 특허 기술이 사용됐다.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의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과 체결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은 260건을 넘어섰다. 지난 12개월 동안 새로 확보한 와이파이 특허 라이선스 계약 상대방만 25곳이며 이 가운데 11곳은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이다.
ⓒ 자료: 화웨이
화웨이는 그동안 미국 e커머스(전자상거래)·클라우드 업체 아마존과 핀란드 통신장비업체 노키아(Nokia), 삼성전자,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중국 스마트폰업체 오포(歐珀·OPPO), 중국 스마트폰업체 비보(維沃·vivo), 중국 스마트폰·전자업체 샤오미(小米·Xiaomi), 일본 전자업체 샤프 등 글로벌 기업들과 특허 라이선스 또는 상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화웨이는 와이파이6의 핵심 기술인 하나의 주파수를 여러 개로 나눠 여러 기기가 동시에 통신할 수 있게 하는 직교주파수분할다중접속(OFDMA)을 비롯해 다양한 표준기술 개발에 참여해왔다. 와이파이7에서도 여러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활용하는 다중연결 기술(MLO) 등 핵심 기능 개발에 이바지했다. 특허분석 업체 그레이비는 화웨이가 와이파이7 관련 600건 이상의 ‘특허 패밀리’(群)를 확보해 퀄컴과 인텔 등을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
특허사업 확대는 화웨이가 미국 제재를 받기 시작한 이후 기술 자립을 위해 R&D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를 수출통제 명단에 올리고 첨단 반도체와 미국산 소프트웨어·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다. 이에 맞서 화웨이는 자체 반도체와 운영체제(OS), 통신·AI기술 개발에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총력전을 폈다. 미국의 제재가 본격 시작된 2019년 1317억 위안이던 R&D 투자액은 지난해 1923억 위안(약 38조원)으로 46%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매출액의 21.8%를 R&D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화웨이의 지난해 국제특허 출원 건수는 7523건으로 9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더욱이 미국의 제재로 접근하기 어려워진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16만 5000건 이상의 유효 등록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 자료: 화웨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台灣積體電路製造)를 통한 첨단 반도체 생산이 막혔지만 자체 설계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 ‘기린’을 개발해 올해 5년 만에 5G 플래그십(최고급) 스마트폰의 글로벌 판매를 재개했다.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의 중국 판매가 제한되자 자체 AI가속기 ‘어센드’를 확대하고 구글 안드로이드 대신 자체 모바일 OS인 ‘하모니OS’도 구축했다.
다만 이번 계약이 최종 발효되기 위해선 미 연방거래위원회와 법무부의 반독점 및 국가안보 기준 충족 여부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워싱턴 정계 일각에서는 중국 테크 기업으로의 기술 종속과 로열티 자금 유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대중 강경론이 거센 만큼 라이선스 승인 과정에서 적잖은 정치적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