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금선(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장)ⓒ서울연구원
우리나라는 부유한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사상 처음 4만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빈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다. 상대적 빈곤율은 2011년 18.5%에서 2023년 14.9%까지 낮아졌으나 2024년 15.3%로 다시 상승했다.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2016년 44.8%에서 2023년 39.8%, 2024년 37.7%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다.
노인빈곤율이 낮아지는 가운데 전체 빈곤율이 반등했다는 것은 다른 연령층의 빈곤위험에도 주목해야 함을 시사한다. 노동시장과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빈곤위험은 보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날 수 있다. 청년은 노동시장 진입과 경력 형성의 변화에 직면하고, 중장년은 산업전환에 따른 적응을 요구받는다. 특히 가족을 돌보는 청년과 중장년에게 돌봄부담은 소득불안을 키우는 또 다른 위험이다. 서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노동과 돌봄 취약성이 중첩된 근로연령층의 빈곤율은 27.9%로 그렇지 않은 집단의 약 네 배였다. 일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교육훈련과 구직 기회도 줄어들어, 빈곤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빈곤층을 고정된 집단으로 구분해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변화하는 위험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빈곤은 누구나 생애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으며, 그 상태에 놓인 시민은 보호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 갈 주체이다. 따라서 사후적 보호와 함께 일시적인 소득하락이 장기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자립을 뒷받침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추진한 서울디딤돌소득 시범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정책실험이다. 지원기준을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로 확대해 기존 제도가 포괄하기 어려웠던 계층까지 포함했다. 3차년도 평가에서 지원가구 중 근로소득이 증가한 가구는 33.9%였다. 교육·훈련 관련 지출도 비교가구보다 50% 증가하는 등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처럼 안정적인 소득은 가구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가족돌봄 부담이 큰 가구의 빈곤위험에 대응하려면 소득보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득을 보장하면서 돌봄서비스로 부담을 덜고, 확보된 시간과 기회를 교육훈련과 일자리 지원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을 지속하거나 역량을 높여 더 나은 일과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득을 기반으로 돌봄·건강·고용·교육을 가구의 필요에 맞게 연결하는 통합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디딤돌소득은 기존 소득보장제도가 충분히 포괄하지 못했던 계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지원방식을 시험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사회안전망은 빈곤에 놓인 사람을 보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애과정에서 소득불안을 경험하는 청년과 중장년까지 폭넓게 포괄해야 한다. 소득으로 삶의 기반을 보장하고, 돌봄서비스로 부담을 덜며, 교육훈련과 일자리 연계로 더 나은 일과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립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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