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빈칸에 더한 상상력…‘암살자(들)’이 불러온 역사왜곡 논란 [이슈]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30 12:49  수정 2026.09.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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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공방 정치권까지 확산…영화적 상상력 어디까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가 실제 사건에 남은 의문을 허구와 결합해 재구성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은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진영 간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암살자(들)’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공식 수사 결과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지만, 영화는 당시 현장에서 울린 총성과 발견된 탄환, 경호 과정 등을 둘러싼 의문에서 출발한다. 유해진이 연기한 형사 박철구와 박해일이 맡은 기자 김재환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추적하며 당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파고든다.


개봉 이후 공방은 빠르게 확산됐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 29일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논란의 여파는 작품 밖으로도 번졌다. 영화 관련 콘텐츠를 공개했던 이동진 평론가, 지무비, 김단군 등이 영상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했고, 시사회에 참석하거나 작품에 호평을 남긴 배우들의 SNS에도 비판과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암살자(들)' 포스ⓒ하이브미디어코프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졌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불매와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허진호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까지 거론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창작물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암살자(들)’을 논픽션이 아닌 픽션 영화라고 강조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 기조인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라’를 언급했다.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확정하려는 작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개된 기록과 자료, 서적, 다큐멘터리 등을 조사한 뒤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재구성했으며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허진호 감독도 개봉 전 인터뷰에서 작품의 출발점을 설명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와 논문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한 만큼 완전한 상상은 아니지만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배후나 은폐 여부에 대해서도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 남아 있는 의문을 따라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영화에서 다룬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사건 발생 30여 년 뒤인 2005년 관련 한일 외교문서와 수사기록, 문세광 공소장 등이 공개되면서 당시 수사와 총격 상황을 둘러싼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도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경호 문제 등을 다뤘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충돌은 한국영화에서 반복돼 왔다. 2016년 ‘덕혜옹주’는 실제 덕혜옹주의 삶에 적극적인 항일 행적을 더하는 등 극적 각색을 거치면서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 ‘나랏말싸미’ 역시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승려 신미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며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을 불렀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극적으로 재구성할 때 어디까지 상상력을 허용할 수 있는지는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당시 법원은 영화 전체의 상영을 금지하지 않았다. 다만 부마민주항쟁과 박 전 대통령 장례식 등 실제 기록영상이 별다른 설명 없이 삽입될 경우 관객에게 영화 전체가 사실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도록 했고, 제작사는 해당 부분을 검은 화면으로 처리해 개봉했다.


이러한 전례를 놓고 보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의 문제를 ‘픽션이니 괜찮다’거나 ‘역사와 다르니 허용할 수 없다’는 두 가지 선택지로 나누기는 어렵다. 실제 기록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허구와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결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관객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질 만한 장치를 사용했는지를 작품 안에서 따져야 한다.


‘암살자(들)’ 역시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 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기존 의혹을 서사의 동력으로 사용한 만큼 영화가 선택한 정황과 연출 방식은 비평의 대상이다. 문제는 작품에 대한 비판이 정치적 진영논리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논쟁이 진영 간 대결로 굳어질수록 정작 무엇이 사실이고 영화가 무엇을 상상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려난다. 역사왜곡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편 가르기에 머물지 않고, 영화 자체에 대한 검증과 비평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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